2024년 6월 13일 발표된 케냐 2024/25 재정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한·아프리카재단 조사연구부가 매주 선별·분석하여 전하는 최신 아프리카 동향과 이슈
|
|
|
2024년 6월 13일 발표된 케냐 2024/25 재정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 법안이 6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후, 수도 나이로비(Nairobi)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졌고, 역사상 최초로 국회 건물 일부가 방화로 파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시위대는 부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세제 인상안이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생활고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거리로 나와 항의했다. 이에 대해 윌리엄 루토(William Ruto) 케냐 대통령이 6월 26일 재정법안 철회를 전격 발표하며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격화된 시위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케냐 국가인권위원회(KNCHR: Kenya National Commission on Human Right)는 7월 1일 성명을 통해, 전국적인 시위와 관련하여 최소 39명이 사망하고 36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케냐 독립경찰감독청(IPOA: Independent Policing Oversight Authority)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시위대원의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손꼽히는 케냐에서 왜 이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번 주 아프리카 위클리는 케냐 2024/25 재정법안 반대 시위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정리한다.
|
|
|
6월 13일, 케냐 재무부는 상향식 경제 혁신 추진(Sustaining Bottom-Up Economic Transformation Agenda)*을 목표로 3조 9,920억 실링(약 311억 달러) 규모의 2024/25 예산안을 발표하며, 막대한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한 증세안을 제안했다. 케냐 정부는 800억 달러가 넘는 국가 부채 부담을 줄이고 정부 세입을 27억 달러 높이기 위해 주요 생필품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소비세를 인상하는 세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번 증세안에는 빵에 대한 부가세 16% 부과, 모바일 머니 및 은행 거래 수수료에 대한 소비세 인상(15%→20%), 소득세 인상 등이 포함된다.
*상향식 경제 혁신 추진의 주요 목표는 ①거시경제 안정성 유지 및 안보 강화를 통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 ②핵심 인프라 개발 및 확대 ③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투자 강화 ④보건 및 교육 등을 통한 인적자본 육성 ⑤청소년 및 여성 역량 강화 ⑥주정부 지원 ⑦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 및 법적, 제도 개혁 시행이었다.
케냐는 부채 위기 해결이 시급하다. 케냐 정부는 이미 연간 세입의 약 60%를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 중 3분의 1은 이자를 갚는 데 쓰이고 있다. 2023/24 회계연도에는 GDP의 5.7%에 해당하는 재정적자를 기록했지만, 정부는 2024/25 회계연도에 이 재정적자를 GDP의 3.3% 수준으로 개선하고, 2026/27 회계연도까지 GDP 대비 세수 비율을 14.1%에서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목표하고 있다.
케냐는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경제 호황을 타고 국가산업 개발, 공공 인프라 건설, 기업 금융지원 등에 필요한 국가 재원을 다양한 국제 채권자로부터 차입하며 투자를 확대했지만, 이와 같은 경기 부양책이 실패하면서 현재는 막대한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뿐 아니라 올해 초 발생한 대홍수*까지 더해져 케냐는 더욱 심각한 부채 위기에 빠졌다.
*올해 초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최소 270명이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홍수에 취약한 비공식 정착촌 거주민들이 주로 피해를 입었다.
2021년 1월, 케냐는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으로부터 36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도입했고, 2024년 5월에는 세계은행으로부터 12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실행하며 급한 불은 끈 상황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출 만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긴축 조치가 필요하다. 케냐 정부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단기적으로는 향후 차입이 더욱 어려워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실업률과 빈곤이 증가하여 케냐 국민에게 전반적으로 더 악화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
|
케냐 국민들은 정부가 제안한 대규모 증세가 무리하게 추진되었다며 거리로 나섰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과도한 세금과 실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고, 이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집회시위를 조직·전개했다.* 6월 18일, 시위대는 나이로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재정법안 반대 시위를 열었다. 케냐 경찰은 시위를 불허하며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해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200여 명 이상의 시위대원을 체포했다.
*시위대는 정치인들과 정당에 대해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며, 민간인 주도의 거리 행진 등을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1978-2002년 간 집권한 모이(Daniel arap Moi) 대통령의 일당 독재 체제 하에서 발생했던 인권에 대한 억압을 겪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이들의 시민권에 대한 의식 성장이 시위로 표출되었다고 분석한다.
6월 20일, 재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루토 대통령의 서명만을 앞둔 시점부터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시위대는 국회 건물을 포함해 시청사 일부를 방화했고, 나이로비 중심업무지구에 위치한 대다수 상점들이 파손·약탈 피해를 입었다. 루토 대통령은 6월 25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이번 시위를 반역적인 사건(treasonous event)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고, 아덴 두알(Aden Duale) 국방부 장관은 주요 기반시설의 파괴와 침해를 초래한 보안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군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국회 재석 의원 319명(재적 의원 349명) 중 찬성 204표, 반대 115표로 표결을 통과했다.
케냐 정부와 시위대 간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으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케냐 지부 등 인권단체의 발표에 따르면, 시위 개시 이후 7월 1일 기준으로 24명이 죽고 361명이 부상당했으며, 627명이 체포됐다. 국제법률가위원회(ICJ: 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케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하지 않도록 당부했고,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 전 케냐 대통령은 “시위는 헌법이 명시한 모든 케냐인의 권리이며, 지도자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양측의 진정을 촉구했다.
국제사회도 재정법안 반대 시위가 유혈 사태로 이어지는 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주케냐미국대사관 등 13개국 외교단은 공동성명을 통해 “케냐 헌법은 평화적 시위 권리를 보장하며, 모든 행위자들은 이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고 언급하며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케냐의 시위로 인한 사망자 및 부상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하고 케냐 당국이 자제력을 발휘하여 모든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촉구했다.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6월 26일 루토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군경이 폭력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인권 침해 혐의에 대한 신속한 조사를 권유했다고 발표했다. |
|
|
6월 26일, 루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전국적인 시위를 야기한 2024/25 재정법안에 대한 재가를 거부한다고 발표하며, 청년들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그는 연설에서, “연간 세입의 61% 이상이 정부 부채 상환에 사용되고 있다”며 이번 재정법안이 국가의 막대한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실을 포함한 행정부 전반, 의회, 사법부 등에 즉각적인 긴축 조치를 지시했다.
한편, 루토 대통령은 6월 30일 주요 언론인들과의 생방송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여 2024/25 재정법안과 시위 대응 등에 대해 토론했으나,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측근 인사들의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방어적인 입장만을 취해 부정적인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이어서 7월 5일, 루토 대통령은 재정법안 철회 이후 정부 조치 관련 연설을 실시하고, 청년들과 소셜미디어 X Space를 통한 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이 토론에는 청년 163,000여 명이 참가하여 대통령에게 경찰의 시위 진압, 정부의 부정부패 및 무능, 공식 사상자 수에 대해 직설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BBC는 이번 토론에 대해 케냐 역사상 시민들이 정부에 여과없이 질의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실시간으로 답변한 전례는 없다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공론의 장을 높이 평가했다.
재정법안 철회와 X Space를 통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퇴진 요구가 지속되자, 루토 대통령은 7월 11일 리가티 가샤구아(Rigathi Gachagua) 부통령과 무살리아 무다바디(Musalia Mudavadi) 내각총괄 겸 외교장관을 제외한 내각을 전부 해임하고*, 7월 12일 자페트 쿠메(Japhet Koome) 경찰청장을 경질시켰다. 그러나 7월 15일 나쿠루(Nakuru) 지역 거리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이 반정부 시위를 부추겼다고 언급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이에 대한 근거가 없으며 루토 대통령이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케냐 헌법 제152조 제1항에 따라 내각은 대통령, 부통령, 검찰총장, 내각 장관(14-22명)으로 구성된다. |
|
|
케냐 정부는 막대한 부채 부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루토 대통령은 이번 재정법안에 대한 서명을 일단 거부했으나, 케냐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금을 인상하고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IMF와의 2021년 대출 계약을 준수하기 위해 머지 않아 긴축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채무 불이행이 발생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케냐 국민들의 부담을 일부 덜어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신용 등급을 떨어뜨려 향후 대출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화 조달이 어려워질수록 수입품 대금 지불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물가가 불안정해질수록 국민의 불만은 지금보다 심각해질 전망이다.
*7월 8일,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Moody’s)는 케냐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고 부채도입을 억제하는 재정통합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케냐의 신용등급을 B3으로 유지했으나, 반정부 시위로 인한 재정법안 철회 여파로 재정적자가 더 느리게 감소하고 적자를 충당하기 위한 자금 도입 관련 유동성 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해 신용등급을 Caa1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케냐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닉 치즈먼(Nic Cheeseman) 버밍엄 대학교 민주주의 및 국제개발학 교수는 “루토 정부가 부채 상환을 관리할 방법을 찾든 못 찾든, 문제는 케냐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케냐 정부는 재정법안 철회로 인해 세수가 3,460억 실링(약 27억 달러) 감소함에 따라 1,770억 실링(약 14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삭감하고 나머지는 차입으로 충당할 계획을 발표했다. 긴축조치는 영부인과 부통령 배우자를 위한 예산을 전면 삭감하는 내용을 포함하지만, 정부 고용과 의료 서비스 예산도 감축하여 임시 계약직인 중등 교사 4만 6천 명이 직장을 잃게 될 전망이다.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시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더 많은 대화와 설득력 있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
|
|
06750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58, 외교타운 4층 한·아프리카재단
· TEL : 02-722-4700 · FAX : 02-722-4900
kaf@k-af.or.kr
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