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와 MOU를 체결한 것은 아프리카의 뿔을 둘러싼 지정학적 전략에 기반한 결정이다. 내륙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예전부터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 에티오피아는 수출입의 대부분을 지부티의 항구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지부티 항구 이용에 드는 높은 비용과 홍해 지역 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에티오피아는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소말릴란드-에티오피아 MOU에 따라, 에티오피아는 소말릴란드 항구와 홍해 접근로 확보에 관련된 문제를 합의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회담을 요청했다. 2024년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작된 에티오피아-소말리아 협상은 양국의 공통분모를 모색하려는 취지였으나, 곧 교착 상태에 빠졌다. 소말리아는 소말릴란드-에티오피아 MOU를 영토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로 간주하고, 소말리아 해안 지역을 마음대로 이용하기 위한 합병 시도로 규정했다. 한편, 에티오피아는 소말릴란드와의 MOU를 안보·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단계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소말리아와 재협상할 의향이 없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소말릴란드-에티오피아 MOU로 인해 역내에서 에티오피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지역 동맹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의 영향력에 대항하기 위해 지부티, 케냐, 이집트 등 역내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AU는 역내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입장에서는 소말리아를 통한 접근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부티 항구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경제적·군사적 전략에 큰 차질을 겪게 되며, 소말리아 입장에서는 MOU가 자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를 인정하면, 소말리아는 역내에서 권위가 약화되고 북부 영토가 불안정해지며 분리주의 운동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간의 외교적 교착 상태는 무력 분쟁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에티오피아군이 아프리카연합 소말리아전환임무단(African Union Transition Mission in Somalia, ATMIS) 소속으로 소말리아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간 분쟁 발생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ATMIS에서 에티오피아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주권을 침해하려는 시도에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지역 및 세계 강국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평화적 수단을 통한 긴장 해결 가능성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다음 행보는 이 지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의 뿔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두고 국익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동맹과 경쟁관계라는 복잡한 그물망을 헤쳐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