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개혁과 아프리카 :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과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한·아프리카재단 조사연구부가 매주 전하는 최신 아프리카 동향과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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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개혁과 아프리카 : 부재의 역사에서 주역의 시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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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서비스학과 특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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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과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가올 안갯속 미래에 대한 대비, 종전이냐 확전이냐의 갈림길에 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에서의 멈출 줄 모르는 유혈의 악순환까지, 시급한 국제 현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긴박한 현실 뒤편에 자리한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본질적으로 미래의 국제 질서를 바꿀 한 가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개혁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지난 9월 하순 미국 뉴욕에서 ‘미래의 정상회담(Summit of the Future)’라는 타이틀 아래 열린 79차 유엔 총회에서도 안보리 개혁은 뜨거운 화두였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는 ‘변화하지 않는 안보리는 변화하는 세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라는 지적과 함께, 상임이사국 확대와 거부권 개혁 요구가 이어졌다. 이 논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아프리카 대륙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유엔 안보리가 해결해야 할 주요 의제의 논의 테이블에 ‘단골 메뉴’로만 올라왔던 아프리카가 이제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모멘텀을 얻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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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직후의 혼란 속에서 1945년 탄생했다. 당시 세계는 승전국이었던 5개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엔 헌장을 통해 자신들의 패권적 이익을 보장해 줄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고, 거부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 심각한 현실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구성은 그 기나긴 세월 동안 1965년에 단 한 차례, 기존의 6개국이던 비상임이사국의 수를 10개국으로 늘리는 변화를 겪었을 뿐 여전히 1945년 당시의 세계 권력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는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전후 독립한 수많은 신생국들이 국제 사회에 등장했고, 그로 인해 51개 회원국으로 출발한 유엔은 이제 그 회원국 수가 193개국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한 정치와 경제, 외교 측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일원인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동안 과거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지역의 주요 행위자로 새로이 부상했다. 그 가운데 특히 유엔 창설 당시 회원국 수가 4개국(이집트,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남아프리카 연방)에 불과했던 아프리카 대륙의 회원국 수가 54개국으로 늘어, 이제 유엔 전체 회원국 수의 28%를 차지함에도 여전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엔 안보리의 낙후된 구조와 대표성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엔 안보리 개혁은 단지 구성 차원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유엔 안보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 즉 세계 평화·안보의 유지와 분쟁 해결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오늘날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은 비단 전쟁이나 국경 분쟁, 인종 간의 충돌이라는 전통적인 범주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심각한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재난, 기아, 불평등이라든지 인류 전체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신종 팬데믹의 출현,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적절한 대처와 규제 같은 전인미답의 과제들이 갈수록 쌓여만 간다. 하지만 근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의 유엔 안보리는 해결사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강대국의 흥망』 등의 저서로 유명한 영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현재의 (안보리) 구조에 결함이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걸 고칠지에 관한 합의는 여전히 요원하다”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유엔 안보리 개혁 문제는 이제 단순히 정치적 논쟁을 넘어 유엔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손봐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는 그와 관련한 논의의 성패 여부를 가늠하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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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국가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논의가 지역 내에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시점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더 이른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아프리카연합(AU)은 22차 집행이사회 임시 회의에서 “아프리카는 유엔의 모든 의사결정 기구에서 완전한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거부권을 비롯해 모든 특권을 포함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2석과 비상임이사국 추가 확보(현재 아프리카에 배정된 비상임이사국 수는 3석이다)를 요구하는 ‘에줄위니 컨센서스(Ezulwini Consensus)’를 채택했다. 그리고 뒤이어 6월에 발표한 ‘시르테 선언(Sirte Declaration)’에서는 아프리카가 역사적 부채를 청산하고 국제사회의 평등한 파트너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반으로 아프리카가 단일한 입장을 유지할 것을 재확인하며, 유엔 개혁 논의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유엔 안보리 개혁에 관한 아프리카 대륙의 이러한 단일대오는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일례로, 지난 2023년 아프리카 주요 10개국 정상들이 모인 회의(C-10)에서 오비앙 응게마(Obiang Nguema) 적도 기니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대한 역사적 불의를 바로잡는 것이 유엔의 책임”이라며, 에줄위니 컨센서스에서 제시한 아프리카의 요구가 유엔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2024년 8월 유엔 안보리 고위급 회의에서 줄리어스 마다 비오(Julius Maada Bio) 시에라리온 대통령도 "아프리카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2석과 비상임이사국 3석을 확보해야“하는 동시에 “거부권이 유지된다면 모든 새로운 상임이사국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은 단순한 권력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며 내세우는 명분은 비교적 간명하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엔 회원국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전 세계 인구의 17%가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부재는 곧 유엔 안보리의 대표성 부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엔 안보리의 주된 역할 중 하나인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가장 많이 참여하는 세계 20개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평화에 기여해온 아프리카의 공헌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는, 유엔 안보리에 올라오는 의제 가운데 50%, 결의안의 70%가 아프리카 관련 사안들인데도 그 논의의 장에 허락된 아프리카의 자리는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3석밖에 안 되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식탁에 자주 오르지만, 정작 그 식탁에는 앉지 못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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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아프리카의 주장과 요구에 관해서는 표면상으로 국제사회에서도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형국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2024년 8월에 열린 유엔 안보리 고위급 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역사적 불공정을 해결하고 유엔의 효과적인 대표성을 강화하는 일”이라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Linda Thomas-Greenfield) 주유엔 미국 대사 역시도 아프리카가 상임이사국 두 자리를 얻는 것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이는 유엔 안보리 개혁의 필수적인 일부라고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있어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기존 상임이사국 5개국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걸림돌이 하나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거부권이다. 해당 국가들은 모두 겉으로는 아프리카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모양새지만, 어디까지나 ‘거부권이 없는’ 상임이사국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사실상 자신들이 유지해 오던 기득권을 아프리카 국가들에까지 내어줄 수는 없다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확대하려면 유엔 헌장을 개정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와 유엔 회원국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절차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개혁 논의에서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가 직면한 도전 과제는 이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만 그치지 않는다. 설사 다른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는다 하더라도, 과연 아프리카 54개국 중에서 누가 상임이사국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난제다. 단순히 인구수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경제 성장의 정도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평화 기여도가 기준이라면 그걸 누가 무슨 기준으로 계량화할 것인가? 결국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쟁과 갈등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지역 내 회의론자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과연 상임이사국 지위에 걸맞은 경제적·외교적·군사적 역량과 민주주의, 인권 수준을 충족시키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내실을 다지기보다 화려한 명함에 집작하다가는 자칫 ‘수레가 말을 끌려고 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 유엔 안보리 개혁은 단순한 구조 조정을 넘어 국제사회의 정당성과 효과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 과제임은 자명한 듯하다. 그리고 거기에 있어 아프리카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프리카가 그 식탁에 앉아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다만 누가 어떠한 자격과 권한, 모양새를 갖추고 앉느냐가 관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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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글로벌서비스학과 특임교수 한국유엔체제학회 총무이사 전) 한국아프리카학회 편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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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ne, Niguse Mandefero, Mohammed Seid Ali, and Kebede Yimam Tadesse. “Africa’s Quest for Reform of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 Just Cause Curbed by Unrealistic Proposals.” African Journal on Conflict Resolution 23, no. 1 (2023): 60?83. Blum, Yehuda Z. “Proposals for UN Security Council Reform.”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99, no. 3 (2005): 632?49. Lattila, Ville, and Aleksi Ylonen.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form Revisited: A Proposal.” Diplomacy & Statecraft 30, no. 1 (2019): 164?86. Maseng, Jonathan Oshupeng, and Frank Gadiwele Lekaba.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form and the Dilemmas of African Continental Integration.” African Security Review 23, no. 4 (2014): 395?404. Winther, Bjarke Zinck. “A Review of the Academic Debate About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form.” The Chinese Journal of Global Governance 6, no. 1 (2020): 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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