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제 79차 유엔 총회에서 발언한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한·아프리카재단 조사연구부가 매주 전하는 최신 아프리카 동향과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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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차 유엔총회에서 울린 아프리카의 목소리: 반전, 평화, 개혁 |
지난 9월 10~30일 제79차 유엔총회가 미국 뉴욕(New York)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총회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평화를 위해 함께하는 행동, 지속가능한 발전, 그리고 현재 세대와 다음 세대의 존엄성(Leaving no one behind: acting together for the advancement of peace, sustainable development and human dignity for present and future generation)”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희망적인 주제와 대조적으로 국제 정세는 복잡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이 2년 반 넘게 진행 중이고 중동의 위기도 팔레스타인을 넘어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중 2030년까지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목표는 5분의 1미만에 불과하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전쟁과 소외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 SSA) 국가들이 오랜 기간 겪어 왔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아프리카 위클리는 제79차 유엔총회 속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발언과 이에 관련한 국제 정세를 역사적 배경과 엮어서 살펴본다.
*유엔 보도자료에 따르면 17%의 목표(targets)만이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절반 정도의 목표가 아주 조금의 진전만 이루었고 1/3이넘는 목표들이 진전을 멈췄거나 퇴보했다.
**1990년 SSA와 남아시아의 절대 빈곤율은 약 50%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3 이상의 인구가 절대 빈곤에 놓여 있었다. 2019년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절대 빈곤율은 1%이고 남아시아가 9%로 확연히 낮아진 반면, SSA 지역은 여전히 35%에 달한다. SSA 48개국 중 30개국이 1998년 이후 최소 한 번씩 세계은행의 ‘분쟁과 폭력으로 취약해진 국가(fragile,conflict affected, and violent countries, FCV)’ 리스트에 올랐다.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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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이스라엘-가자 전쟁 |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빗대어 강도 있게 비판했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그는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들에게 집단적 처벌(collective punishment)을 행했고 가자 주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언급하는 데 이어 “우리 남아공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자행하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이스라엘의 정책과 비교한 것은 라마포사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제 39대 미국 대통령은 2006년 <팔레스타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아닌 평화(Palestine: Peace Not Apartheid)>라는 책을 쓰며 로스엔젤레스타임즈(Los Angeles Times) 기고문에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유대인 정착민들 사이의 격리, 그리고 이스라엘 점령 아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가해진 정부의 박해를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하 흑인들이 살던 것보다도 더 억압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남아공 국민들이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전 대통령과 함께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노벨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도 이와 비슷하게 비교했다. 그는 “성지 방문동안 나는 굉장히 힘들었다.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남아공에서 우리에게 벌어졌던 일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라고 2002년에 한 컨퍼런스에서 밝혔다. 그 뒤로도 2014년, “이스라엘이 점령지 내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행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사랑하는 남아공에서 벌어진 일과 고통스러울 정도로 비슷하다."고도 밝혔다. 이런 시각은 최근 더 널리 받아들여져 2021년 미국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in the US)와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남아공은 팔레스타인과의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다. 2023년 남아공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이스라엘을 인종학살 혐의로 제소했다. 남아공은 또 브릭스(BRICS)* 무대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는데, 특히 2023년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이스라엘에 휴전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아공 의회는 같은 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스라엘과 단교하고 프리토리아(Pretoria)에 주재한 이스라엘 대사관을 폐쇄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때 라마포사 대통령의 유엔총회에서의 발언은 남아공이 팔레스타인에 느끼는 역사적 동질성과 그에 따른 외교적 행동이라는 큰맥락의 한 줄기로서 이해할 수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함께 부르는 명칭으로 같은 이름의 국제협력기구가 2009년 출범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가진 국제협력을 지향한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레이트,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올해 초 새롭게 가입하며 회원국 및 협력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주앙 로렌수(Joao Laurenco) 앙골라 대통령 또한 이스라엘이 국토를 보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권리가 있는 한편, 43,0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살해되었으나 책임자들이 국제사회에서 처벌받지 않는 부당한 상황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이 이를 예방할 책임도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리오르 하이아트(Lior Haiat)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9월 초 엑스(X) 계정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여러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의 인종학살 혐의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거나 “신뢰할 수 없는 하마스 소식통에 기댄 편향되고 거짓된 주장”이라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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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줄리어스 마다 비오(Julius Maada Bio)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가자지구,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평화를 위해서는 경제 개발, 인권 존중, 포용적 정치 절차 등이 필요한데, 이들은 모두 고립 속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대화와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적 노력을 강조하는 말로 풀이된다.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시에라리온의 현대사에 비춰보면 비오 대통령의 발언은 이상주의라기보다 시에라리온이 겪었던 엄혹한 내전을 딛고 힘들게 얻은 평화의 현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시에라리온은 1991년부터 다이아몬드 이권 문제로 긴 내전을 치렀는데 이 내전으로 5만 여명의 사망자와 450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시에라리온의 길고 잔인했던 내전은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대화와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해결의 물꼬가 트여 2002년에 종식되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당시 지도자였던 아마드 테잔 카바(Ahmed Tejan Kabbah) 시에라리온 전 대통령을 민주적 정치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적법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지도자로 평가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혁명연합전선(Revolutionary United Front, RUF) 반군이 내전을 일으킨 이후 두 차례의 쿠데타로 국내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민선을 통해 선출되었는데, 또 다른 군사 쿠데타로 인해 권력을 잃자 사태 해결을 위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ECOWAS)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나서게 된다.
이후 나이지리아군을 주축으로 한 서아프리카 평화 유지군(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Monitoring Group, ECOMOG)이 수도 프리타운(Freetown)을 점령하고 카바 대통령을 복귀시킨다. 그 뒤로도 RUF의 공격과 평화 협정이 수차례 반복되었지만 ECOMOG, 아프리카통일기구(Organization of African Unity, OAU), 유엔 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Mission in Sierra Leone, UNAMSIL), 영국 정부 등의 끊임없는 군사적, 외교적 도움으로 2002년 카바 대통령은 내전을 끝낼 수 있었다. 폭력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적 노력이 결실을 본 순간이다. 그 후 ECOMOG는 201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시에라리온 국민들과 비오 대통령에게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은 이상적인 담론을 넘어서는 이야기이다. |
비오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는데,* “안보리는 낡았다. 그리고 아프리카가 그 낡음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식민주의의 유산,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주변화(marginalization)가 아프리카 대륙에 큰 상처를 남겼고 이는 결국 아프리카의 경제개발과 안정성, 그리고 국제 정치에 영향을 줬다”며 “따라서 아프리카는 최소한 2개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요구한다. 기존의 상임이사국이 가지던 거부권도 받아야 할 것이고, 두 개의 비상임이사국도 항상 아프리카에 할당되어야 한다”고 필요한 개혁의 골자를 밝혔다.
* 시에라리온은 2024~2025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며, 2024.8월 안보리 의장국이었다.
윌리엄 루토(William Ruto) 케냐 대통령도 같은 맥락에서 주장을 이어갔다. “아프리카에 상임이사국 자리가 없다는 것은 역사적인 부정의이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엔 개혁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같은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14억 인구가 유엔 의사결정의 핵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안보리 개혁은 긴급한 문제이다. 안보리는 더욱 더 포용적으로 변해야한다”라고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보리는 이전부터 제왕적 상임이사국 구조가 그 역할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은 실제로 모든 결의안에 절대적 거부권(right to veto)을 가지는데, 비상임이사국에게는 이 권리가 없다. 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엔과 안보리가 설립된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엔과 안보리를 구상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 승전국인 미국, 영국, 구소련의 국제정치적 이해관계가 설립에 작용했다. 그래서 당시 함께 승전국이었고 이해관계가 잘 맞았던 프랑스와 중국이 미국, 영국, 구소련과 함께 상임이사국(Permanent 5, P5)을 구성했다. 중국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과 구소련이 붕괴된 것을 반영한 변경이 있었지만 그 외의 큰 변화는 없었다. 결국 P5는 자국의 이해관계를 따라 거부권을 행사해 안보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2024년 4월 러시아가 대북제재 이행 감시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이를 대표적으로 방증한다. 당시 러시아의 거부권행사는 국제사회와 우리나라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다.
안보리 개혁 요구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지만 진전이 없다. 안보리의 권한이 실제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냉전 종식 이후 1994년부터 유엔총회 결의안 A.RES.48.26(1993)에 따라 안보리 개편을 위한 개방형고위 실무그룹(Open-Ended High-Level Working Groups, OEWG)이 활동을 시작했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P5에 대한 실제적 변화는 없었다. 절대적 거부권으로 대표되는 상임이사국의 권한이 막강한 반면 상임이사국 구성에서는 지역 대표성이 떨어진다. 남미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는 상임이사국이 한 곳도 없다. 이 대륙들에 대한 정치적 소외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개발에서 소외되어 왔던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이번 총회에서 안보리 개혁을 주장한 배경이다.
오랫동안 식민주의, 주변화(marginalization), 빈곤, 갈등과 저개발로 고통 받아 온 아프리카의 목소리와 그 속에 담겨있는 그들의 경험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79차 유엔총회 속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평화와 개혁 요구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불평등과 갈등 해결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평화와 협력을 위한 주체자로서, 우리가 마주한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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