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기구(NGO) 독립샤밥재단(Independant Shabab Foundation: ISF)에서 주최하는 제13회 룩소르 아프리카영화제가 지난 2월 9일부터 15일까지 이집트의 역사도시 룩소르*에서 개최되었다. 룩소르 아프리카영화제는 이집트 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인 사이드 푸아드(Sayed Fouad)와 이집트 배우이자 감독인 아자 엘 호세니(Azza El Hosseiny)가 구상한 범아프리카 영화제로 2012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동 영화제가 개최되는 룩소르는 나일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4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번 제13회 룩소르 아프리카영화제의 슬로건은 “모든 색채의 아프리카(All Colors of Africa)”로, 엘 호세니 감독은 이 영화제가 세계에서 문화·인종·언어·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대륙인 아프리카를 잘 보여주는 축제라고 강조했다. 모든 아프리카 영화의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특히 북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서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지역이 골고루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심사위원단도 이를 고려해 공평하게 구성한다고 언급했다.
룩소르 아프리카영화제는 매년 한 아프리카 국가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는데, 올해는 말리가 선정되었다. 엘 호세니 감독은 말리의 경우 영화 산업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최근 아프리카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영화인을 배출했다며 2023 칸영화제 감독주간(Cannes’ Directors Fortnight)에서 황금마차상(Carrossse d’Or)*을 수상한 아프리카 영화의 거장 술레이만 시세(Souleymane Cisse) 감독을 대표적인 예로 언급했다.
*프랑스영화감독협회(La societe des Realisateurs: SRF)가 칸에서 열리는 감독주간 개막식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혁신성, 독립적 자세, 대담함 등을 갖춘 감독이 선정된다.
술래이만 시세 감독은 50년 이상 활동하면서 칸에 여러 차례 초청되었다. 1987년 가족 영화 <밝음(Yeelen)>(1987)으로 당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는 2016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95년 <와티(Waati)>로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프랑스영화감독협회는 “시세 감독은 말리의 다종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여러 차원에서 시와 정치, 사회 비판과 신화를 버무려 작품을 세상에 내보였다. 가난한 자, 여성, 반체제 인사에 대한 억압에 목소리를 내고 종교적, 경제적, 가부장적 보수주의에 맞서면서도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는 않았다. 시세 감독은 인간 본성이 갖는 모호함과 모순을 우아하게 포용해왔으며 시공간을 초월한 가치를 표현했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동 영화제는 세네갈 영화인들도 비중 있게 소개하였는데,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상업 장편영화를 찍은 최초의 여성감독 고(故) 사피 파예(Safi Faye)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했다. 파예 감독은 여성과 농민의 삶에 주목하여 탁월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 바 있다. 영화제 측은 “파예 감독은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영화를 제작할 용기를 냈으므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동 축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아프리카 영화의 아버지(Father of African cinema)”로 일컬어지는 고(故)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 감독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했다.
*1923년 세네갈에서 출생한 아프리카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 작가로 프랑스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활동했다. 1956년 첫 소설 <흑인 부두노동자(Le Docker Noir)>를 발표하며 평단의 찬사를 얻었고, 데뷔작 <흑인소녀(La Noire de...)>(1966)로 세계의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 되었으며 이후에도 수많은 역작을 남겼다. 특히 할례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여성을 그린 영화 <물라데(Moolaade)>(2004)는 2004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2024 제13회 룩소르아프리카영화제에서 장편영화 최우수상은 앞서 소개된 <굿바이 줄리아(Goodbye Julia)>가, 단편영화 최우수상은 케냐 영화 <사랑의 행위(Act of Love)>가 차지했다. <사랑의 행위>는 작가인 셸리 기통가(Shelly Gitonga)가 자신의 이야기에 기반해 쓴 내용으로,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 PPD), 모성애의 이면 등을 보여준다. 위태롭게 생계를 이어가던 어린 엄마 줄리아나는 유명 회계회사 최종 후보까지 오르지만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지고 이에 절망한 줄리아나는 자신의 모성애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에릭 음완기(Eric Mwangi) 감독의 <사랑의 행위>는 몸바사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영화상(Best short film)과 최우수각본가상(Best scriptwriter)을 수상한 바 있고 잔지바르국제영화제, 헐리우드 아프리카 시네마 커넥션(Hollywood African Cinema Connection) 등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룩소르 아프리카영화제에서 케냐 단편영화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에서 한국과 미국 영화 관객 점유율의 합이 83.5%를 차지한다. 2023년 전체 상영작 중 한국, 미국, 중화권, 유럽, 일본을 제외한 여타 국가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겨우 0.3%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상영작들은 특정 국가에 편중된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지역의 영화는 낯선 세계를 쉽게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세계가 아프리카 영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이번 주말에는 영화를 보며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