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이스라엘 제소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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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이스라엘 제소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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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했다. 두 국가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 갈등을 빚은 적이 없던 터라 이번 제소는 국제사회를 더욱 당혹케 만들었다. 남아공의 이스라엘 제소는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으며, 이에 대한 ICJ의 판결과 이스라엘에 대한 향후 조치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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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9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Gaza Strip)에 대한 ‘완전한 봉쇄(Total Blocked)’를 시행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이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로의 식량, 물, 의약품, 연료, 전기 등의 공급이 모두 차단되었으며, 일반 시민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게,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는 있지만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면서 방어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23년 12월 29일 남아공은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격과 봉쇄가 국제 제노사이드 협약(Genocide Treaty)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ICJ에 제노사이드 혐의로 이스라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두 국가는 평소 교류나 관계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남아공의 이번 제소가 매우 의외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남아공의 이러한 행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과 정치적인 동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아공은 1948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합법화된 이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자행한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이끌었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와 연대했던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팔레스타인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전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당시 국가반역죄로 수감된 넬슨 만델라의 석방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여, 만델라 역시 이를 잊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유대를 이어나갔다. 연대를 기반으로 ANC는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남아공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지속된 인종차별정책이다. 이 정책은 흑인들을 포함한 비백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인종 간 격차를 공식화했다. 이로써 비백인들은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고, 인종차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도 제약을 받았다. 1994년 만델라를 대통령으로 하는 최초의 흑인정권이 탄생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철폐되었으며, ANC는 현재까지 남아공 집권여당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시릴 라마포사(Cyril Ramaphosa) 현 남아공 대통령은 최근 ANC 연설 중, 만델라 전 대통령의 가르침이 이번 이스라엘 제소에 영감을 줬다며, “이는 원칙의 문제”라고 이번 제소의 이유를 밝혔다. 탐산카 말루시(Thamsanqa Malusi) 남아공 인권변호사 또한 남아공 정부의 많은 인사들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억압을 경험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제소한 배경에 대해 첨언했다.
남아공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아파르트헤이트에 비교하며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판하는 등 팔레스타인을 확고하게 지지해 왔다. 이번 제소의 배경에는 위와 같은 남아공과 팔레스타인과의 역사적 유대감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총선을 앞둔 남아공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이번 제소의 또 다른 동기가 되었다는 분석이 함께 제기 되었다. 남아공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ANC가 줄곧 집권당으로 압도적의 의석 수를 확보해왔으나, 정부 부패와 경제 침체, 사상 최악의 전력난과 높은 실업률,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등으로 ANC에 대한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2023년 10월 인종관계연구소(Institute of Race Relations: IRR)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ANC는 사상 처음으로 5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ICJ에 제소한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공약의 일환”이라며 “지금 팔레스타인 주민이 겪는 고통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 흑인이 경험한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해당 발언으로 인해, ANC가 과거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했던 역사적 배경과 접목시켜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ICJ 제소를 단행했다는 의견에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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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ICJ에 이스라엘 제소를 위한 84쪽 분량의 소장을 제출했다. 해당 서류를 통해 남아공은 “이스라엘은 가자기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에 관여했으며, 지금도 관여하는 중이고 앞으로 더 관여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더하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족과 인종을 상당 부분 파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에 국제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라 임시조치 즉, 휴전 명령을 내릴 것을 요청했다.
남아공은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인 대량 학살, △신체적, 정신적 피해 야기, △강제 이주, △식량 봉쇄, △의료 시스템 파괴, △팔레스타인인 출생을 막는 행위 등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인 대량 학살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시작한 이후, 2월 13일 기준 2만 8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그 중 70%가 여성과 아동이다. 이밖에 실종자 수 또한 7,780명에 달하지만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수색 작업이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다.
2. 신체적, 정신적 피해 야기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이후, 2월 13일 기준 6만 8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당했고,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외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에게 자행한 무차별적인 체포와 구금, 고문으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야기하고 있다.
3. 강제 이주 현재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 중 약 190만 명 이상이 강제 이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지난 10월 13일, 가자지구 북부에 머물고 있던 11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24시간 이내로 남부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아딜라 하심(Adila Hassim) 남아공 변호사는 해당 명령 자체가 대량 학살이라고 주장했다.
4. 식량 차단 이스라엘은 하마스(Hamas)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에 “완전한 봉쇄”를 선포하며 가자지구로의 모든 공급을 막았다.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일부 가자지구에 들어가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인해 인도주의적 지원이 닿기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에서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5. 의료시스템 파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의료시설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가자지구의 보건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은 총 238건 이상이고, 그 결과 61개의 병원을 비롯한 다른 의료시설이 피해를 입거나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스라엘은 병원이 보유한 발전기나 태양광 패널, 물탱크나 산소 저장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시설을 주로 공격해왔다. 최소 57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가자지구 내 병원과 의료시설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6. 팔레스타인인 출생을 막는 행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사람의 70%는 여성과 아동으로, 특히 임산부들이 의료서비스 부재와 생필품의 부족 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트레스로 인한 유산, 사산, 조산 증가 등 생식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아공은 제출한 소장을 통해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 즉각 중단, △가자지구 안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단체의 군사작전 추진 금지, △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합리적인 조치, △ 국제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른 의무 이행, △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강제 이주 명령 철회와 식량·물·연료 접근 보장, △ 제노사이드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처벌, △ 집단학살 증거 보존, △ 법원의 조치 이행에 대한 정기적 보고, △ 사건을 복잡하게 하거나 연장시키는 모든 행위 삼가 등 총 9가지의 임시조치를 요구했다.
이밖에도 남아공 정부가 제출한 소장에는 이스라엘 관료들이 제노사이드 의도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증거도 함께 포함되었다. 특히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가 하마스와의 전쟁에 관해 한 연설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고대 적군인 ‘아말렉(Amalek)’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말렉이 우리에게 한 짓을 기억하라”고 말했는데, 아말렉은 구약성서에서 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멸시키라고 명령한 민족이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의 해당 발언이 ‘인종 청소’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남아공 정부는 소장을 통해, 하마스의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공격을 분명하게 규탄하는 바이지만, 자국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이 아무리 심각하고 잔혹한 범죄를 수반할 공격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행위가 국제 제노사이드 협약 위반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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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9일 남아공의 이스라엘 제소 이후, 약 한달 만인 2024년 1월 26일 ICJ는 공개회의를 통해 첫 번째 판결 내용을 발표했다.
ICJ는 이스라엘에 자국 군대가 제노사이드를 저지르지 않도록 보장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더불어 인도주의적 구호물품 반입을 허용하고 제노사이드 혐의의 증거를 보존할 것을 요구했다.
남아공은 ICJ에 제출한 소장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 즉각 중단”을 가장 먼저 제시했으나, ICJ는 군사작전 자체를 중단할 것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며 남아공이 주장한 상기 9개의 임시조치를 반영한 △제노사이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 시행, △이스라엘 군대의 제노사이드 행위 금지, △제노사이드 혐의 증거 보존,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행위 예방 및 처벌, △가자지구로의 인도주의적 구호물품 반입 및 허용 등 총 6개의 임시조치 결정을 내렸다.
ICJ의 임시조치는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혐의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일종의 가처분 명령이다. 즉, ICJ의 임시조치를 이스라엘에게 강제로 집행할 수는 없다. ICJ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시작한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하라는 임시조치 결정을 내린바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러시아는 지금까지도 해당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제노사이드 혐의 자체에 대한 본안 판결 결과가 나오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ICJ의 법적 구속력이 있는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UNSC) 회원국이 해당 문제를 UNSC에 회부할 수 있으며, UNSC는 조치를 준수하도록 요구할지에 대한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조치 대상국이 만약 UNSC의 투표를 거부하면, 해당 국가는 경제, 무역, 무기 금수 조치, 여행 금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 남아공은 현재 UNSC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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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국제사회의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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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차 판결이 공개된 이후, 남아공은 ICJ의 임시조치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정의를 찾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며 즉각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다. 로날드 라몰라(Ronald Lamola) 남아공 법무장관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무덤에서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에 대한 만족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또한 ICJ 공개 재판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환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팔레스타인 또한 이제 가자지구에 대한 대량 학살을 멈춰야 할 법적 의무가 이스라엘에게 생겼다며 환호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강렬히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집단 학살에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이 역으로 제노사이드 혐의를 받고 있다”며, 오히려 이스라엘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테러범과 싸우고 있다고 남아공의 행보를 비난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계속 테러범과 싸울 것이라며 이번 ICJ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스라엘 국영항공사 엘알(EL AL)은 오는 3월 말부터 남아공 직항노선의 운항을 중단할 것임을 발표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여행객 감소를 이유로 밝혔지만 남아공에 관련된 보복 조치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스라엘 지지국인 미국의 경우, 남아공의 제소와는 무관하게 양국 관계가 굳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24년 1월 블링컨(Antony John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했는데, 마지막 순방국인 앙골라에서 “남아공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제소가 미국과 남아공과의 중요한 관계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앞서 남아공의 행보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단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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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 속 이스라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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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월 17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AU)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를 비난하고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무사 파키(Moussa Faki) AU 집행위원장은 이스라엘의 이번 공세는 국제인도법에 대한 가장 극악한 위반이라며 비난했다.
* 한편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진 가자지구에 대한 입장 토론에서 우간다, 남수단, 르완다 3개국은 이스라엘 측지지 입장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남아공은 최근 이스라엘군의 라파(Rafha) 공격*으로 인해 약 100명이 사망한 이후, ICJ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라파 공격이 이번 ICJ의 잠정조치 위반에 해당하는지 긴급 검토를 요청했으나, 16일 ICJ는 해당 요청을 기각했다.
* 지난 2월 12일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반대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마지막 피난처인 라파 일대를 공격해 약 100명이 사망했다.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ICJ에 제소한 것과 이에 대한 1차 판결로 인해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을 중단하거나 남아공이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하지만 이는 약 150일 가까이 지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점차 사라지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여론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가 있으며, 향후 국제무대에서 남아공이 이에 대한 입장과 목소리를 어떻게 유지 또는 타개해나갈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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