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6일 케냐 나이로비(Nairobi)에서 첫 번째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주재국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프리카 15개국 정상들을 비롯하여,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 아킨우미 아데시나(Akinwumi Adesina)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총재, 존 케리(John Kerry) 미국 기후특사 등 관련 고위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올해 11월 UAE 두바이(Dubai)에서 개최되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앞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목소리를 결집하자는 케냐 정부의 제안으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와 세계를 위한 녹색성장 촉진과 기후재정 해법'을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아프리카 각국 대표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 지원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방안 등을 모색하며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논의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 중 아프리카 국가들이 차지하는 양은 4%가 채 되지 않지만, 억울하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가장 크게 받고 있다. 기온 상승은 1961년 이후 아프리카 농업생산성을 34% 감소시켰다. 지구 평균 기온 섭씨 1.5도 상승으로 인해 서아프리카에서 옥수수 수확량의 9%를, 남부 및 북부 아프리카에서 밀 수확량의 20~6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프리카 뿔(Horn of Africa) 지역에서는 가뭄이, 중앙 및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홍수와 같은 극심한 이상 기상현상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따르면 기후 변화와 관련된 자연재해로 이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매년 70억∼150억 달러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기후위기는 환경과 농업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의 폭력과 무장단체를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역내 안보와 사회적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 나이로비 선언문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 탕감과 글로벌 탄소세 도입, 그리고 아프리카를 재생에너지 허브로 키우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참여국들은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있는 서구 선진국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에 명시된 목표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가속화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Copenhagen Climate Change Conference)**에서 선진국들이 약속한 바와 같이 기후변화를 위해 개발도상국에 연간 1,000억 달러를 제공할 것과, 2022년 이집트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합의한 손실피해기금(Loss and Damage Facility)***을 신속히 운영할 것을 강조했다.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5개 당사국이 채택한 협정으로, 온도 목표를 구체화하고 각 당사국이 스스로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설정하도록 규정했다.
**2009월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이며,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시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고 선진국은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지원한다는 등의 목표를 정했으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해관계가 맞서 구속력있는 조치를 끌어내는데 실패함으로써 실효성이 의문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문제가 처음으로 COP 정식의제로 채택된 사례이며,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를 위한 기금을 설립하는데 합의했다.
또한 참가국들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글로벌 탄소세 도입을 지지할 것을 촉구하며, 탄소세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에 대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보장하고, 세금 인상 문제를 지정학적/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분야도 주요한 아젠다였다. 참가국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재생에너지 개발의 중심지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 해결책의 중심이 되기 위한 잠재력과 야망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노동력의 본거지이자 미개발 재생에너지의 잠재력과 풍부한 천연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주최국인 케냐의 루토(William Ruto) 대통령은 "젊은 인구, 방대한 재생에너지 개발 잠재력과 천연자원을 갖춘 아프리카는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역설했다.
아프리카 대륙이 전 세계 재생에너지 자원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지난 10년간 3조 달러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투자 중 단 2%에 해당하는 600억 달러만이 아프리카에 투자되었다. 참여국들은 “2022년 기준 56기가와트(GW)였던 아프리카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2030년까지 300GW로 늘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7년간 6,000억 달러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재생에너지는 아프리카의 기적이 될 수 있다"며 "아프리카가 재생에너지 강국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G20 지도자들에게 204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에 필수적인 코발트, 망간, 백금의 전 세계 매장량 중 약 40%를 보유
루토 대통령은 동 정상회의 계기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자금 지원 약속이 230억 달러에 달했다고 언급했다. 금번 회의 결과로 영국은 아프리카 전역에 4,900만 파운드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미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재민들을 위해 4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식량안보 노력 가속화를 위한 3천만 달러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케냐에 4억 5,000만 유로 상당의 친환경 수소 비료공장 건설 지원 등을 약속했다. COP28 개최국인 UAE는 아프리카 대륙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45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알 자베르(Al Jaber) COP28 의장은 "세계는 기후변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는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체적으로 기후위기와 위협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대응 방안을 도출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일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의의 효과와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례로, 가디언(The Guardian) 지는 정상회의의 주요 내용을 다루며 “기후 위기: 아프리카는 말하고 있지만 서방은 듣고 있습니까?(Climate crisis: Africa is talking but is west listening?)”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ldlife Fund: WWF)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야심차게 제시한 기후 공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2조 8천억 달러가 필요하다. 나이로비 선언문은 선진국들에게 14년 전 코펜하겐에서 약속한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 재원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을 재촉했지만, 실제 이행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네이처 컨저번시(The Nature Conservancy)의 케빈 주마(Kevin Juma)도 알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약속과 발표를 현장에서의 가시적인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아프리카 민중기후회의(Africa people’s climate assembly)는 성명을 통해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는 약하고 부적절한 선언으로 끝났다"며 "녹색 식민주의의 깃발을 든 선진국들이 그들의 입맛에만 맞는 아프리카 기후정책을 계속 강제했다"고 일갈했다. 이어 "아프리카 천연자원의 상품화와 추출이야 말로 그린워싱"이라며 "이러한 프로젝트는 결국 서방 기업과 국가들이 아프리카에서 환경오염을 계속하도록 허용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아프리카연합(AU)은 55개 회원국이 참가하는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를 앞으로 2년마다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집행위원회에 이날 채택한 나이로비 선언의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