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는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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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는 남아공, 국가재난사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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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남아공 정부는 고질적인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2.9(목) 선포한 ‘국가재난사태(state of disaster)’를 두 달 만에 종료하였다.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대통령은 3.6(월) 전기부(Ministry of Electricity)와 기획평가부 두 개 부처를 신설하고 내각을 개편하는 등 개혁에 나선 바 있다. 남아공의 전력난 위기의 원인과 동향을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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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공은 매일 10시간 가량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잇단 정전으로 히터가 꺼지면서 양계 업장에서 병아리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연쇄적으로 닭고기과 계란 값이 인상되는 등 식량 공급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BBC 역시 남아공 일부 지역에서는 신호등마저 작동하지 않아 교통 혼잡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의 전력난은 최근 일이 아니다. 2007년 말부터 시작된 전력 부족으로 인해 2008년부터 순환단전(load shedding 또는 rolling blackout)*이 시행되었으며, 이 제도는 2014년, 2015년, 2018년, 2019년에도 계속되었다.
*순환단전: 전력 수요가 가용량을 초과하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룹별로 전력공급을 차단하여 전력망의 수요를 완화하도록 일시적으로 시행되는 관리 정전이다. ‘블랙아웃(대정전)’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전 조치 중 하나이다.
2018년 국영전력공사 Eskom(에스콤)은 기존 4단계이던 순환단전을 8단계로 개편하였다. 단계가 높을수록 단전시간이 길어지며, 가장 높은 8단계일 경우 하루의 절반을 전기 없이 지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2년 한 해 남아공의 총 단전일은 207일에 달했으며 2023년에도 200일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3.1월 순환단전이 6단계로 상향 시행되는 등 전력 위기가 더욱 심화되자,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부정적인 여론에 라마포사 대통령은 동월 다보스 포럼(Davos Forum,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을 취소하기도 했다.
남아공 순환단전 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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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난이 경제 및 기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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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력난은 가정뿐 아니라 경제 전 분야에 타격을 주고 있다. 기업들은 별도로 전기를 생성하기 위해 발전기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휘발유를 구매해야 해 운영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2년 한 해 전력난에 따른 남아공의 경제적 손실 규모를 240억 달러(한화 약 30조 4,272억 원)로 추산했다. 남아공 중앙은행(South African Reserve Bank: SARB)은 3.31(금) 기준금리를 7.25%에서 7.75%로 크게 인상하며 이러한 결정에는 "연료, 전기,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전망"이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ARB는 2021.11월부터 지금까지 3.5%였던 금리를 9차례 연속 인상했다.
전력난은 각종 경제 전망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SARB는 1.1%로 전망했던 2023년도 남아공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전력난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고려하여 0.2%로 하향 조정했다. IMF 역시 금년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을 0.1%로 예상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2.3(금)-2.9(목) 간 경제학자 6명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3년에 남아공이 경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한 달 전(45%)에 비해 대폭 늘어난 68%에 달해 전문가들의 우려를 보여주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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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목) 라마포사 대통령은 전력난으로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에 대응하는 비상조치가 요구된다며 국가재난사태*을 선포했다. 먼저 남아공 정부는 Eskom의 2,540억 랜드(약 139억 달러) 규모의 부채를 탕감하여 송배전 시스템 수리 및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동 대통령은 당장 부족한 전력 공급량을 늘리고 병원과 상하수도 인프라를 순환단전에서 제외시켜 필수 시설에 대한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조달 및 감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태양광 발전패널을 구입하여 학교나 병원, 기업체에 공급하는 한편, 인근 국가에서 전력을 수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남아공 정부는 2002년 ‘재난사태법’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기존 법률로는 대응할 수 없는 정도의 심각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면 정부는 기존 절차에 따르지 않고도 재난 대응에 필요한 물자나 서비스를 조달, 제공할 수 있다. 남아공 정부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었을 때와 2022.4월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전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관할할 부처를 신설할 것을 약속했다. 3월, 대통령실 내 전기부를 신설하고 48세(1975년생)의 라모코파(Kgosientsho Ramokgopa) 박사를 전기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전기부는 Eskom을 비롯한 관계 부처를 총괄하고 남아공 정부의 에너지 행동계획(Energy Action Plan)*을 관리할 예정이다. 라모코파 장관은 토목공학 학사와 공공행정 석박사를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0~2016년 동안 츠와네(Tshwane) 시장을 지내고 2019년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실 투자인프라 수석을 지낸 인물이다.
*에너지 행동계획은 2022.7월 라마포사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발표한 에너지난 해결조치로, 국가 에너지위기위원회(National Energy Crisis Committee)를 설립하여 △Eskom 개혁 및 기존 전력공급 개선, △발전 분야 민간 투자 활성화, △재생에너지, △가스 및 배터리 등에서 전력 조달 강화, △가정 및 기업 옥상에 태양열 패널 설치를 장려, △장기적 에너지 안보 달성을 위한 전력 부문의 근본적인 개혁 등을 주요 목표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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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난의 원인: 발전소의 노후화, 부채 그리고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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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전력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Eskom의 발전소 노후화를 지목한다. 장비들이 노후화되어 반복적인 고장이 발생하면서 전력 공급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skom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메두피(Medupi)*와 쿠실레(Kusile)** 두 곳에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했으나 설비 고장, 공사 지연, 기술적 문제 등으로 현재 두 발전소의 발전량은 최대 발전 용량의 절반에 그치는 상황이다.
* 2007년 건설, 2015년 첫 전력 생성 ** 2007년 건설, 2017년 첫 전력 생성, 현재 건설 작업 계속 중
Eskom의 부채 규모가 약 4,000억 랜드(한화 약 29조 936억 원)에 달하며 재정 부족으로 발전 시설을 정비하거나 노후화된 발전 시설을 제때에 교체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이에 2023.1월 정부는 전기요금을 18.65% 인상하였으나 Eskom의 부채 탕감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에는 조직폭력배들이 발전소의 연료와 예비 부품을 절도하는 사건이 발생해 2022.12월부터는 발전소에 군대를 배치하기도 했다.
한편, 남아공 야권은 전력난이 현 정부의 정책 실패의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남아공 최대 야당인 민주동맹(Democratic Alliance)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었을 때 정부가 조달 절차를 터무니없이 운용했다고 비판하고, 이번 재난사태 선포를 법원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민주동맹은 무엇보다도 Eskom에 대한 개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재난사태 선포가 정부와 여당의 부패를 심화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4.4(화) 남아공 재무부는 Eskom의 모든 지출 신고를 면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강력한 비판을 받은 후 철회하기도 했다. Eskom의 CEO 루이터(Andre De Ruyter) 역시 TV 인터뷰에서 정부와 여당의 부패를 폭로하며 심지어 자신을 대상으로 한 음독 시도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으나 2.22(수) 해임*되었다.
* 현재 칼리브 카심(Calib Cassim) 최고재무책임자(CFO)가 CEO 대행 중
이런 상황에서 3.20(월) 남아공 제2야당인 경제자유투사당(Economic Freedom Fighters: EFF)은 라마포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라마포사 대통령이 경제난과 에너지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 모인 시위대의 규모가 수천 명의 규모로 가장 컸고,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수십~수백 명 규모의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시위 진압을 위해 3,500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며, 이날 공공폭력 등의 혐의로 최소 8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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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수) 남아공 협치전통부는 라마코파 장관이 최근 몇 주간 전력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소를 방문하고 Eskom을 포함한 정부 내 협의를 진행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진전을 보인바, 국가재난사태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명이 발표된 당일에도 4단계 급의 순환단전은 계속되어, 시민들은 여전히 전력 부족에 대한 우려를 계속하고 있다. 고도과나(Enoch Godongwana) 재무장관은 금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순환단전은 적어도 12~18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아공 정부가 국가재난사태 관련 법적 공방을 피하기 위해 철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NGO OUTA는 Reuters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국가재난사태가 부패를 용이하게 했으며, 전력 위기는 기존의 법들로도 충분히 관리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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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은 세계적인 석탄 생산 국가이자 소비국이며 전체 고용의 19%(2019년 기준)가 석탄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BP 세계에너지 통계(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에 따르면 남아공은 전기의 85%가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등 석탄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탄소배출량 아프리카 1위, 세계 12위에 달한다. 원자력 발전은 국가 전력의 4.3%, 재생에너지(대부분 풍력)은 6.7%에 그친다. 따라서 정부는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외부 투자자 및 정부/국제기구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다.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남아공의 석탄 의존도 경감과 탈 탄소화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85억 달러의 보조금과 저리의 대출 및 투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남아공 정부는 이전 계획보다 10년 빠른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시작하겠다는 야심찬 새로운 기후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2023.1월 말 열린 아프리카민족회의(ANC) 고위급 회의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석탄을 당장 포기할 수는 없다며 석탄 화력 발전소 가동을 유지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발자국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남아공의 다양한 재생에너지원과 선진국들의 협력과 투자가 새로운 남아공 경제의 동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전력난을 타개할 확실한 해결책은 아직 묘연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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