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3 [아프로33] 현장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사업을 이끌다 -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아프리카부장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2-06-23 오전 10:31:00 / 2180한국수출입은행은 2021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사업본부에 아프리카부를 신설했다. 그리고 개발협력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아프리카 국가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반영되어 최초의 아프리카부 부장에 이현정 팀장이 임명됐다. 이현정 부장은 1995년 한국수출입은행에 입사한 이래 20년 넘게 수출금융업무에 종사하며 국제개발협력 업무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2017년 탄자니아 다레살람(Dar es Salaam) 사무소장을 모집한다는 사내 공고를 본 이현정 부장은 미지의 아프리카 현장에서 국제개발협력 업무를 익힐 수 있는 자리에 매력을 느꼈다.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한 이현정 부장은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리나라처럼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작게나마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꼈다. 물론 현장에서 일하며 어려움도 겪었지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주어진 여러 프로젝트를 카리스마있게 이끌어 진행시켰다. 탄자니아 최초의 해상 교량인 ‘뉴 샐린더 교량(New Selander Bridge)’ 사업은 이현정 부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 완공을 앞둔 뉴 샐린더 교량을 통해 EDCF가 지원하는 사업이 현지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레살람 시민들은 뉴 샐린더 교량이 심각한 교통 체증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전체 도시의 인상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리라 기대한다. 현재 이현정 부장은 탄자니아에서 사업을 관리했던 경험을 토대로 EDCF의 효과적인 개발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공적수출신용기관으로 대부분의 인력이 수출금융에 종사하며 지원부서도 수출금융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나 또한 1995년 입사한 이래 줄곧 수출금융 업무에 대부분 종사했다. 그런데 한국수출입은행에는 수출금융 외 기획재정부가 위탁한 EDCF를 운용하는 부서와 통일부가 위탁한 남북협력기금을 운용하는 부서도 있다. 나는 그중 EDCF를 운용하는 국제개발협력 업무에 큰 매력을 느꼈다.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미래 수출입시장을 육성하는 일이 EDCF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이 될 때까지 좀처럼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탄자니아 다레살람 사무소의 소장을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한국수출은행은 수출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만큼 세계 주요 도시마다 사무소가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도쿄, 파리, 워싱턴 D.C. 등의 대도시에 소재한 사무소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지만 나는 예측가능한 업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파견 근무라는 모험을 선택한다면 좀 더 용기를 내 아예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레살람 사무소에 부임하여 EDCF 업무에 종사한다면 그동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경력을 쌓고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탄자니아가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멋진 경험이 될 거라 믿었다. 때마침 첫째 딸은 입시를 끝냈고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둘째 딸은 중학교를 졸업한 상황이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다레살람 사무소장직에 지원했다. 그리고 2: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임명됐다.
공항에 내려 마주한 다레살람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이었다. 공항에는 전임 소장이 직접 나와 반겨주었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우리나라 1960~70년대 모습 같은 풍경이 생경하여 호기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예상하지 않았던 도시의 모습, 특히 마천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사람들이 가축을 몰고 가는 등 상반된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스팔트 위를 가축과 함께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너머로 30년 이상 된 듯한 색바랜 중고자동차가 내달리고 그 너머로 고층건물이 숲을 이룬 풍경이 자아내는 대비감이 흥미로웠다.
내가 그동안 바라 왔던 낯선 땅에 불시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가 머물 곳은 해외에서 온 주재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어 불편함은 없었다. 함께 온 둘째 아이도 학교생활에 무척 만족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습 과정과 분위기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즐겼다. 일례로 다레살람에서는 필수 교육 과정에 수영이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흔히 아는 자유형, 배형, 평형 등의 영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 뜨는 법,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다이빙하는 법 등 실생활에서 필요한 기술 위주로 가르쳤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삶에 꼭 필요한 기술 위주로 가르치는 탄자니아의 교육법이 새롭고 합리적으로 여겨졌다.
탄자니아에서 마주한 EDCF 현장
EDCF 사무소가 위치한 다레살람은 탄자니아의 경제수도다. 공식 수도인 도도마(Dodoma)가 아닌 다레살람에 사무소를 둔 이유는 이곳이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이자 나아가 동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무역 거점 도시이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댄 여덟 국가 중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 말라위 등 여섯 국가가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동아프리카에서 바닷길을 통한 수출입 산업에 있어 다레살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도마가 행정 수도라면 다레살람은 경제수도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도로 체계가 도시화로 인한 인구과밀화와 항구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물류의 이동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다레살람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시민들의 피로감이 더해졌다.
특히 제1 경제산업 중심지인 음사사니(Msasani) 지역과 중심상업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간의 교통 정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탄자니아 정부는 음사사니와 CBD 간의 정체를 해소하고자 인도양을 가로질러 이 둘을 연결하는 대규모 해상 교량을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탄자니아 최초의 해상 교량에 해당하는 이 ‘뉴 샐린더 교량(New Selander Bridge)’ 건설사업을 EDCF가 지원한다. 내가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한 시기는 2013년 구상한 뉴 샐린더 교량의 공사 입찰 준비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뉴 샐린더 교량 건설사업은 EDCF가 아프리카대륙에서 지원한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이자 고인이 된 존 마구풀리(John Magufuli) 前대통령의 공약으로 우리나라와 탄자니아 양국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DCF 같은 경우 지원할 사업을 우리가 주체가 되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수원국의 재무부가 우선순위에 둔 사업이어야 하며, 그 사업을 관할할 부처가 해당 사업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기획재정부가 사업의 필요성과 우리에게 그 사업을 해낼 역량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사업을 승인한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 주로 지원하는 사업은 지역 인프라 구축이다. 그런데 지역 사회의 불편을 혁신적으로 해소하더라도 사업의 형태가 생소하다 보니 사람들은 정작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아루샤(Arusha)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 큰 변전소 하나가 있다.
참고로 아루샤는 킬리만자로산과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관문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잦으며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관광 시설과 사람들이 밀집하자 아루샤에서 정전이 잦아졌다. EDCF는 킬리만자로산에서 아루샤까지 송전망을 구축하고 변전소를 건설하여 일대에 원활한 전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송전망 구축과 변전소 건설은 지역의 고질적 정전 문제를 해소하는 핵심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나는 변전소를 지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송변전 공사를 EDCF가 지원하고 우리나라 기업이 완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현지인들 대답의 온도는 미적지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