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9 [아프로32] 로컬 리더십으로 아프리카 미래를 열다 - 윤성혁 前 삼성전자 아프리카 총괄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2-06-09 오후 1:25:00 / 1754삼성전자의 미국 주재원으로 16년간 근무한 윤성혁 전무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아프리카 시장을 맡으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미국과 아프리카 시장 사이에 공통점이 없었던 만큼 윤 전무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웠을 법도 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런 뜻밖의 발령을 새로운 도전으로 여기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그랬듯 아프리카대륙에서도 현지 직원 중심의 로컬 리더십을 강조했다. 거래선들을 직접 만나 협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판매전략을 논의하는 윤 전무의 방식에 사업 파트너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다. 친근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에 아프리카대륙의 거래선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삼성전자를 진정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와 거래선의 요청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본사를 설득하여 아프리카 시장에 적합한 중저가 스마트폰과 TV 제품들을 출시하여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2017년 아프리카 총괄로 임명되어 2020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 주재하며 삼성전자 주요 제품들의 시장점유율을 압도적인 1위로 성장시켰다. 그가 주재한 기간 사내 분위기도 크게 쇄신됐다. 인종을 향한 편견 없이 인재를 채용하여 흑인과 백인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한 결과 삼성은 남아공에서 중요한 흑인경제육성법 B-BBEE(Broad-Based Black Economic Empowerment) 1등급을 확보하여 현지 파트너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사랑받는 로컬 브랜드로 거듭났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철저히 현지 맞춤형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윤 총괄의 경영철학이 아프리카 시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성공적인 로컬 리더십을 통해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한 윤성혁 총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미국의 경험을 토대로 아프리카 시장을 맡다
2017년 아프리카 총괄로 발령을 받았을 때 경영진은 이런 당부를 했다. 미국 시장에서 우리의 위상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잠재적인 시장인 아프리카대륙에서 기반을 구축해주면 좋겠다는 당부였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성장이 예상되는 아프리카 시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삼성도 지금 기초를 다져놓는 투자를 해 두어야 미래에 후배들이 삼성 아프리카(Samsung Africa)를 잘 이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에 큰 흥미와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후배들과 삼성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닦는 미션은 무척 뜻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세 번에 걸친 미국 주재 기간 삼성은 2006년 미국의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와 같은 선두주자를 꺾고 일등의 반열에 올랐다. 또 2013년에는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가 아이폰의 인기를 뛰어넘어 일등에 등극했다. 이 과정에 참여하여 일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영업 전문가로 주재하며 큰 시장에 익숙해져 있었던 내게 사실 아프리카대륙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자 도전이었다. 그런데 직접 아프리카대륙의 거래선들을 만나고 시장을 접해보니 아프리카 시장이 미국 시장보다 매출의 비중만 작을 뿐 사업을 펼쳐 나가는 방식은 똑같았다. 다만 아프리카대륙에서 주요 경쟁사들이 중국업체라는 점이 크게 달랐다. 미국에서 경쟁사는 아이폰이나 소니 등 일류의 글로벌 기업들로 프리미엄 제품력과 브랜드 마케팅이 주요 전략이었지만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저가로 승부하는 중국 회사들을 상대하여야 했다.
나는 먼저 현지 거래선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주요 관심과 요청 사항을 경청했고 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우선 지원해 주어야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이 구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프리카대륙의 거의 모든 거래선들이 한결같이 요청한 사항은 삼성의 브랜드로 아프리카 시장에 필요한 경쟁력 있는 엔트리급 모델을 출시해 달라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80~90%가 저가 모델인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대응방안을 찾아야 했다. 나는 거래선들에게 신모델을 개발하자면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삼성이 적극적으로 준비할 것을 약속했다. 곧바로 본사에 이러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신제품 개발을 요청했고, 1년 후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거래선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우리 제품도 소개하며 판매와 마케팅 전략을 함께 협의했다. 삼성 아프리카의 현지인 담당자들은 내가 거래선과 접근하는 방식이 새롭다며 무척 만족해했다. 아프리카 통신 사업자들은 규모는 작아도 그 지역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어 제아무리 삼성전자라도 현지 직원들이 통신 사업자 경영진들과 미팅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총괄이 직접 만나자고 하니 통신 사업자의 CEO들도 미팅에 응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세계 최대 통신 사업자를 직접 만나 발로 뛰었던 경험을 살려 아프리카 현지인들과 함께 통신 사업자의 경영진은 물론 실무진도 만나면서 파트너십을 좀더 전략적으로 바꾸어 나갔다.
특히 내가 출시 예정인 신제품의 장점을 직접 시연까지 하며 마케팅 전략을 설명하고 ‘함께 잘 판매해보자’고 이야기했을 때 그들의 눈빛이 조금씩 바뀌며 관심을 두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통신 사업자의 경영진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기들과 신제품을 공동 출시하는 전략과 지원 사항을 요청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적절히 지원해 주었으며 추가로 미국에서 크게 효과를 보았던 마케팅 협력 사례들도 공유해주었다. 거래선 CEO급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앞으로 자신들과 정기적으로 미팅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주요 통신 사업자의 경영진들과 미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보며 나는 본사 경영진이 나를 아프리카대륙으로 보낸 배경이 이해가 됐다. 이처럼 거래선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판매전략을 함께 수립하니 관계가 금세 좋아졌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해 성장한 로컬 리더십
내가 아프리카에 부임했을 당시 현지 직원들의 사기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현지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좀 더 많은 정보를 공유받고 내부 경영진들과 원활한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현지 사무실에서도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을 하도록 했다. 전체 직원과 소통하는 이런 방식의 미팅은 삼성 아프리카에서는 최초로 실시된 것이었다. 타운 홀 미팅을 통해 매월 경영실적, 신제품 출시 등 회사의 중요한 사항들을 투명하게 공유했다. 특히 직원들은 그들이 안고 있던 불만과 요청 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직접 답변을 해주는 질의응답 시간에 큰 호응을 보였다. 경영진이 일반 직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를 반영하고 개선해줄 의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동시에 실제로 사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현지 직원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조직 내 분위기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운 홀 미팅을 하던 날, 직원들이 앞으로 타운 홀 미팅을 매달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나는 이를 받아들여 4년간 매달 타운 홀 미팅을 진행했다. 매달 투명한 소통의 장을 통해 모든 직원이 회사와 한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 로컬 리더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에 만난 거래선들은 삼성은 아프리카 시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며 선진국 중심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듯 보였다. 그동안 아프리카 현지 직원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거래선으로서는 크게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먼저 이런 부정적인 인식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직원들에게 ‘로컬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직원들이 로컬 리더십을 가지려면 가장 먼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사 정책이나 제품 기능을 몰라서야 거래선을 만나도 일을 진전시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정보와 지식을 현지 직원들과 공유했다. 가끔 지나치게 보안을 문제로 삼아 현지 직원들에게 주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정말 민감한 부분이 아니라면 최대한 많은 정보가 공유되어야 직원들이 업무 이해력이 높아지고 성과도 낼 수 있다. 나는 본사와 협의하여 현지 직원들과 주요 정보를 함께 공유해 나가면서 새로운 업무 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현지 직원들이 회사를 생각하는 충성도와 자부심이 크게 높아졌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에도 직원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거래선을 만나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출시 마케팅을 협의하며 거래선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등 로컬 리더십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역량을 끌어 올리는 동시에 거래선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히 쌓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한 결과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가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던 삼성 아프리카가 삼성 본사로부터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Global Best Practice) 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나는 현지 직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아프리카대륙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