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3 [아프로28] 아프리카에 영화학교를 세우는 꿈을 꾸다 - 김영돈 프레임인아프리카 대표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2-03-03 오후 4:14:00 / 2205프레임인아프리카(Frame in Africa)는 레디고아프리카(Ready Go Africa)의 수익 법인이다. 비영리단체인 레디고아프리카가 아프리카에 영화학교를 설립한다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프레임인아프리카는 수익을 창출한다. 영상 기획자이자 제작자인 김영돈 대표가 프레임인아프리카 대표를 맡았다. 영상 전문가로서 김영돈 대표는 아프리카 영화의 뛰어난 작품성을 익히 잘 알았다. 197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 영화가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는 등 우리 영화보다 훨씬 앞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김영돈 대표는 여러 정치적 배경과 이해관계로 위축된 아프리카 영화 산업이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저변을 마련하는 일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프리카국가에 영화학교를 설립한다는 레디고아프리카의 목표에도 깊이 공감하고 있다. 또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아프리카대륙과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활발히 교류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김영돈 대표는 특히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에 지배당한 아픈 역사를 지닌 아프리카국가와 우리나라 사이에 공통된 정서가 흐르고 있는 만큼 문화적 접근이야말로 진정으로 서로 상생하는 길이라 믿고 있으며,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프레임인아프리카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업을 뛰어넘어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국내 영상 시장이 포화 상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의 영상 시장에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는 웨딩 촬영 분야만 보더라도 관련 업체가 무수히 많아 가격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추세다. 반면 외국의 경우 웨딩 영상의 완성도가 한참 뒤쳐져 있을 뿐 아니라 업체도 많지 않았다. 빚을 내서까지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문화가 남아 있음에도 말이다. 국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바에는 차라리 해외로 나가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높은 영상 수준을 널리 알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느 지역이 적당할지 고민하던 중 후배 한 명이 뇌리에 스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유학한 후배였다. 사실 애초에 유학 장소로 미국과 호주를 염두에 뒀던 후배에게 처음 남아공을 추천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결심한 후배가 조언을 얻고자 나를 찾아왔을 때 당시 나는 회사에서 출장으로 남아공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때의 나는 남아공에 완전히 매료돼 있었다.
쾌적한 날씨와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풍광과 도회적 면모는 그동안 상상했던 아프리카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대로 눌러앉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더불어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학비나 물가도 낮은 편에 속했다. 남아공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후배를 만났던 만큼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남아공을 적극 추천했다. 그랬더니 후배가 덜컥 남아공 유학을 결심했다. 그의 과감한 결정에 나는 내심 놀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으로 내가 후배에게 아프리카 영상 시장에 대해 물었다. 아프리카 비즈니스 컨설팅을 업으로 삼은 후배는 아프리카로 진출할 것을 적극 권했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함에도 경쟁 업체가 거의 없다고 했다. 내가 해외진출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이미 포화 상태가 된 시장이었던 만큼 귀가 솔깃했다. 일전에 내가 후배를 아프리카로 이끌었다면, 이번에는 후배가 나를 강하게 이끌었다.
아프리카 영상 사업을 구상할 무렵 대학원에서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났다. 현재 비영리단체 레디고아프리카의 한만웅 대표다. KBS 편집감독 출신인 한만웅 대표는 아프리카에 영화학교를 건립하는 큰 꿈을 품고 있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업종의 전문인력을 기르겠다는 한만웅 대표의 포부가 근사하게 느껴졌다. 그전까지 비영리단체는 나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동시에 현지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이역만리 아프리카대륙에 전문 교수진을 파견하고 각종 기자재를 갖춘 학교를 세우는 데에는 꽤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나는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 각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곧 수포로 돌아갔다. 정부의 아프리카 지원사업 계획에서 교육, 보건 등의 분야가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어 문화사업 지원은 아무래도 어렵다고 했다. 의아했다. 중국이라는 강대국 옆에서도 수천 년 동안 자주 국가로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민족이 지닌 강력한 문화 정체성 때문이 아니던가. 실제로 오늘날 아프리카 사람들도 식민 지배와 고속 성장을 연달아 겪으며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런데 같은 고민을 해온 우리 정부가 아프리카 문화지원 사업에 소홀하다니 의아하고 안타까웠다. 정부 지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사회 공헌 사업을 전개할 자금을 직접 마련하기 위해 레디고아프리카 산하에 수익 법인 프레임인아프리카를 설립했고 내가 대표를 맡았다.
드라마를 통해 공통된 정서를 확인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이루려면 우선 돈을 벌어야 했다. 문화가 다르고 유대 관계가 전혀 없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사업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특히 대부분의 아프리카국가에서는 관계를 통한 신뢰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사전 조사 차원으로 나는 국내에 거주 중인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을 찾아다녔다. 그들과 대화하며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극을 즐겨 본다고. 그때 들었던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는 2009년 즈음 케냐에서 MBC 드라마 <주몽>을 방영하자 사람들이 방송 시간에 맞춰 모두 귀가하는 바람에 한동안 거리가 한산했다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리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그들이 좋아하는 액션신이 많고, 스토리텔링이 강해서인 듯싶었다. 언젠가 KBS 드라마 <겨울연가>를 방영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우리와 달라 큰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순간 우리나라 사극을 아프리카에 방영하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카메룬에서 활동하는 한인 사업가를 소개받았는데 그도 드라마를 수출하는 일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인맥을 동원해 카메룬의 공중파 방송국인 LTM 관계자를 섭외했다. 이제 영상 전문가로서 내가 인기를 끌만 한 드라마를 선정하기만 하면 됐다. 여러모로 <각시탈>만한 작품이 없어 보였다.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각시탈>은 사극 중에서도 액션신이 많은 편이며, 무엇보다 독립 운동을 다룬 작품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서 싸운 민족 영웅을 그린 이 작품이 오랜 식민지배 경험을 가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각시탈>은 카메룬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서구 열강에 맞서 싸운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도 아직 그럴 여력이 없어 <각시탈>을 보며 대리 만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업 모델로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국가들은 해외 콘텐츠를 좀처럼 유료로 소비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해외 콘텐츠를 구입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나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무료로 제공받으면 그 콘텐츠를 제작한 나라에 문화적으로 귀속될 수 있으며, 자국의 콘텐츠를 제작할 명분이 사라져 점점 시장의 자생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국가들이 자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해외에서 무료로 유입되는 콘텐츠를 취사선택함과 동시에 틈틈이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 역시 <각시탈>의 저작권을 무료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아프리카대륙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꽤 있으므로 광고를 붙이는 일에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국내 기업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수익 면에서는 성과라고 할 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예 결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도 현지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끈 셈이었다. 나아가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른 아프리카국가의 여러 방송국들과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수월해졌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케냐에서 <주몽>을 방영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GBS 방송국에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GBS는 뜻밖에도 케냐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현지 방송국이었다. 당시 국내에 있던 나는 온라인상에서 연락처를 찾아 SNS 메신저로 연락을 취했다. 돌이켜보니 다소 무모한 접근 방법이었던 듯싶다. 다행히 방송국 관계자는 얼굴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경청했고, 보다 더 심층적인 대화를 위해 케냐를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 당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내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또 나를 신뢰했겠는가. 사비를 들여 한걸음에 케냐로 향했을 때에서야 내가 얼마나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을 테다. GBS 방송국 관계자들은 내게 마음을 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선뜻 공유해줬다.
그 덕에 케냐에서 가장 큰 방송국인 시티즌TV(Citizen TV)와 연이 닿았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가져가 샘플을 보여주자 시티즌TV는 정말 이례적으로 이를 유료로 구입할 의사를 내비쳤다. 만약 그들이 실제로 <태양의 후예>를 구매한다면 아프리카 영상 시장에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셈이었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계약을 차분히 진행해 나갔고 그 과정은 무척 순조로웠다. 그런데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영어 번역을 알아보던 중 케냐에서 <태양의 후예>를 방영하는 판권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수소문해보니 국내 콘텐츠진흥원이 무료로 판권을 제공한 <태양의 후예>를 주케냐 한국대사관이 다른 방송국에 전달하여 이미 방영까지 된 것이다. 문제는 그 방송국이 거의 파급력이 없는 곳이어서 현지 대중은 물론 방송 관계자들도 이 드라마가 방영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답답했다. 만약 예정대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아프리카대륙에서 거의 드물게 콘텐츠를 유료로 소비한 사례로 기록되고, 그것이 한국 드라마라는 사실만으로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한국 기업에서 광고를 집행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었기에 더 아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