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의 성과, 아프리카 내 노벨상 역대 수상자 <아프리카 위클리>는 최신의 이슈와 동향에 관한 분석 중심의 국내외자료를 선별, 요약정리하여 제공하는 대국민 메일링 서비스입니다.
|
|
목차 1. 2021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의(Africa-France Summit) 성과 2. 아프리카대륙 내 역대 노벨상 수상자 |
|
2021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의(Africa-France Summit) 성과 |
|
+
지난 10월 8일(금) 프랑스의 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새로운 형식의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프랑스와 아프리카 사이의 새로운 관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으로, 프랑스 및 아프리카 출신 청년들이 초청되었다. 이번 주 위클리에서는 이번 정상회의 주요내용을 요약 및 정리했다. |
|
+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안건(topic)은 프랑스와 아프리카 국민들의 적극적인 양국관계 개선 참여(citizen engagement), 기업가 정신 및 혁신, 교육, 문화 및 스포츠였다. 한편 프랑스 청년들과 아프리카 각 국 청년들이 참가하는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됐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성 평등과 민주주의 정치 및 고용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다. |
|
+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과 아프리카 청년들의 담화였다. 초대받은 아프리카 각 국의 청년들은 마크롱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일례로 세네갈 출신의 젊은 사업가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협력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마크롱 대통령은 아프리카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프랑스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불평등한 관계(asymmetric relation)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과거 식민시대에 자행된 범죄에 대하여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프랑스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금년 4월 프랑스정부는 프랑스가 르완다 대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으며, 알제리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추모와 진실 위원회’(memories and truth commission) 의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식민지배 기간 동안 프랑스가 아프리카대륙에서 수탈한 예술품 가운데 일부를 반환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정작 식민지배 기간 동안 벌어진 프랑스의 행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
|
+
그러나 전문가에 따르면, 이와 같은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 실질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아프리카에 대하여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할지라도, 프랑스의 對아프리카 전략과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프랑스의 이전 대통령들도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아프리카 대륙에서 군사작전을 시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를 우리는 목격해왔다. 또한, 현재 중국, 러시아 그리고 터키 등 신흥국가들이 아프리카대륙에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프랑스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치열히 주도권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지속적으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는 한, 아프리카의 권위주의 정부들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와 프랑스의 對아프리카 정책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
|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위원회는 10.7(목 ) 탄자니아 출신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Abdulrazak Gurnah)를 “식민주의의 영향과 문화 /대륙 간 격차 속 난민의 운명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연민을 가지고 파고 들었다 ”는 이유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 그의 대표작은 , , 등이 있으나 , 아쉽게도 현재까지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없는 상태이다 . 아프리카대륙 출신 노벨상 수상자는 현재까지 27명*(여성 4명 포함)이다. 가장 많은 노벨수상자가 배출된 국가는 남아공(10명), 이집트(4명), 프랑스(알제리 출신 2명, 마다가스카르 출신 1명), 라이베리아(2명), 콩고민주공화국?에티오피아?가나?케냐?모리셔스?나이지리아?탄자니아?튀니지(각 1명) 순이었다. 가장 많은 수상 분야는 평화상(13건), 문학상(8건), 생리학?의학상(3건), 화학상(2건), 물리학상(1건)으로, 수상 연도 전반에 걸쳐 평화상이 가장 많았다. 이 기회를 빌어 아프리카대륙 출신 일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 및 작품을 소개한다. * 아프리카대륙 출신 프랑스인 포함 |
|
+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아프리카대륙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이야기하며 만델라를 빼놓을 수는 없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부이자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인 만델라 前 대통령은 1993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레드릭 빌렘 드 클레르크 (Frederik Willem de Klerk)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평화로운 해체와 새로운 민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반을 다졌다 ”는 평가와 함께 노벨평화상에 선정되었다 . 그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변호사였으며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 흑인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 이로 인해 만델라는 1962년 국가반역죄로 27년 간 복역한 후 1990년 석방되었다. 이후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350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자서전(2020, 두레)>뿐만 아니라 어록 , 스피치 등 그에 대한 저서를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만델라와 연관된 영화와 드라마로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2009)>, <굿바이 만델라(2007)>,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2013)> 등이 있다 . |
|
+ 존 맥스웰 쿠체(J. M. Coetzee) |
|
+ 왕가이 마타이(Wangai Muta Maathai) 케냐의 여성 환경운동가이자 최초의 아프리카 흑인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왕가리 마타이는 2004년 “지속가능한 발전 , 민주주의 , 평화에 대한 기여 ”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마타이는 동부?중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 학자이자 , 최초의 케냐 여성 교수이기도 했다 . 마타이는 1977년 아프리카 사막화 방지를 위한 아프리카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 일생 동안 4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등 환경 캠페인 및 정책에 투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케냐 내 민주주의와 인권 성장을 위해 대선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 국내에는 <검은대륙의 초록희망(2005, 책씨)>, <위대한 희망(2011, 김영사>,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2012, 민음사)> 등의 저서가 소개되어 있다 . |
|
+ 데니스/드니 무퀘게(Denis Mukwege)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인 무퀘게 박사는 1999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부카부 (Bukavu)시에 판지병원 (Panzi Hospital)을 설립하여 수만 명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치료해왔으며 , 이에 “무장충돌과 전쟁의 무기로 성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 ”을 인정받아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2008년 프랑스의 특별인권상과 유엔 인권상 , 2009년 올해의 아프리카인 상 , 2014년 유럽 최고 권위의 사하로프 인권상뿐만 아니라 , 2016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기쁨의 도시>에서 판지병원과 연계 성폭력피해자센터인 ‘기쁨의 도시 ’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활동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 |
|
+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 라이베리아 前 대통령 설리프는 “평화재건 활동에 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안전을 위한 비폭력 투쟁”에 투신한 이유로 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선정되었으며, 2017년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 중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헌법에 따라 임기를 마친 지도자들에게만 수여되는 이브라힘상(Ibrahim Prize)을 수상하였다. 2021년에는 포브스 아프리카의 아프리카 100대 아이콘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리프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2005년 당선)이었던 경험에 대해, 자신의 성공과 실패가 다른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했으며, 내전이 끝난 후 라이베리아가 마주한 도전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매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또한 당시 여성으로만 구성된 내각을 구성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좌절되자, 과거 남성이 차지했던 요직에 여성을 앉히면서 사회적 금기를 깨고 평등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
|
06750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58, 외교타운 4층 한·아프리카재단 · TEL : 02-722-4700 · FAX : 02-722-4900 kaf@k-af.or.kr 수신거부 Unsubscrib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