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3 [아프로③] 쿨(Cool)한 아프리카에서 미래를 그리다- 김사무엘 쏘쿨아프리카 대표 [월드코리안뉴스]
관리자 / 2021-05-13 오후 3:27:00 / 1763‘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쏘쿨아프리카의 김사무엘 대표와 윤준열 부대표는 국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각각 우간다와 탄자니아에서 1년간 NGO활동을 했다. 그때 목격한 모습은 보통 우리가 아프리카 하면 떠올리는 인상과 무척 달랐다. 도회적이면서 세련된 도시 풍경과 과감한 색채와 형태의 예술 작품, 그리고 일상의 패션은 그들의 눈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아프리카 아트는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멋진 모습을 공유하고자 청년 창업에 도전하여 활발하게 아프리카국가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특히 김사무엘 대표는 봉사단원으로 아프리카에서 1년간 근무한 경험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양분이 됐다고 강조한다.
봉사단원으로 첫발을 내딛다
중학생 때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한 경험담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1년간 살다 온 경험을 엮은 글이었다. 해외를 나간 경험은 있어도 단순한 여행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여행으로도 닿기 힘든 아프리카에서 1년을 살았다고 하니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문을 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도전의 범주에서 가장 경계에 있는 일 같았다고 할까. 때마침 가수 겸 탤런트인 알렉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봤다. 내가 상상한 아프리카와 전혀 다른 모습과, 광활하고 장엄한 풍경이 혼재한 영상을 보며 나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때부터 ‘아프리카에서 1년 살기’는 늘 내 버킷리스트 상단을 차지했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프리카대륙의 어느 곳일지라도 1년 동안 경험의 역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일이 단순하지만 확고한 목표로 자리 잡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막연했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월드프렌즈 NGO봉사단원으로 선발된 것. 나는 우간다에서도 수도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 파견됐다. 업무 내용도 다른 단원들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다른 단원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단위의 일을 담당한 반면, 나는 현지 NGO의 디렉터를 도와 단체를 운영하는 일을 맡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내가 조직 운영을 돕고 인사를 관리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만큼 처음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부딪혀보는 수밖에. 매순간 낯선 업무와 그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감을 견뎌야 했고, 때로는 봉사단원으로서 누려야 할 어떤 권리를 잃은 기분이 들어 울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양분이 된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 사업자이지만, 새로운 일을 진행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다. 나는 그 비결을 우간다에서의 경험에서 찾는다. 그때 나는 디렉터와 함께 일하며, 장관 등 우간다의 고위 공직자를 만나는 일이 잦았다. 내가 한 나라의 고위 공직자를 만나 머리를 맞대고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 얼떨떨하면서도 뿌듯했다. 아무래도 그곳이 우간다였기에 경험이 부족한 내게 그토록 중차대한 역할이 주어졌던 게 아닐까. 여전히 인적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서는 직책에 맞는 업무 경험이 부재하더라도 그 업무를 충실히 해내 성과를 내면 그것으로 충분히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고위 공직자를 만나도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 나누고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듯싶다.
한편, 우간다에서 현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동료로서 다가가는 법도 배웠다. 현지 직원들은 시간 개념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내 기준에 비해 대체로 업무 속도가 느렸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다. 나는 관리자로서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모든 단계에서 진행 과정을 집요하게 재차 확인하며 업무 긴장감을 일정 수준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을 거듭 들으며 내 사고방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이 주어진 만큼 일정한 성과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들과 업무과정과 기한에 대해 아웅다웅하는 일이 피곤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고집하는 이념과 세계관이 분명 있었던 듯하다. 내가 아프리카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굳게 지켜 온 세계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만의 오라(aura), 스웨그(swag)가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곳과 이곳 사람들의 삶의 명암은 분명히 존재했다. 특히 내가 있던 지역은 가뭄이 들면 호수에 가서 물을 사 와야 했고, 인터넷이나 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토요일에 근무가 끝나면 현지 버스를 타고 3시간씩 달려 수도 캄팔라를 찾았는데,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현지 사정상 아쉽게 봉사활동을 조기 종료한 후 탄자니아로 넘어가면서, 같은 대륙이지만 전혀 다른 새로운 면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니 그들의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삶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봉사단원으로 파견되기 전 교육받으며 친해진 동료가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그 동료의 신세를 졌는데, 참고로 그가 현재 함께 쏘쿨아프리카를 꾸려가는 윤준열 부대표다.
왜 아프리카인가? 콘텐츠에서 발견한 가능성
나는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길에서 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그들에게는 국적을 불문하고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의 현대적 면모를 처음 마주했을 때 놀란 감정을 잔뜩 흥분하여 묘사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호텔이, 또 카페가 있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워했다. 이는 아프리카를 제3 세계로 소비하는 전 세계 미디어의 영향 때문일 터. 사람들은 아프리카대륙이 가진 잠재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아프리카가 멋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한편, 아프리카 국가와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이 그곳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면면에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정말 멋진 곳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귀국한 후 봉사단원끼리 형성한 커뮤니티를 통해 아프리카를 향한 관심을 이어갔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와 관련한 사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나는 해외 경험을 더 쌓고 싶어 여행길에 올랐다. 아프리카에 관심을 둬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