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6일(월) 아프리카 소식 2021년 4월 26일 (월) | 202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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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외교 - 에티오피아 종족 간 충돌로 최소 200명의 사망자 발생 (Reuters, 4.25.)
-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차드 故 데비 대통령 참석... 아들 마하마트의 정권 계승 지지 (DW, 4.23.)
2. 경제·통상
- 부르키나파소, 마이크로 관개농업 분야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 (The Africa Report, 4.22.)
3. 사회·문화 70년대~80년대 튀니지 시위곡과 대중문화의 역사 (The Conversation,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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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종족 간 충돌로 최소 200명의 사망자 발생 (Reuters, 4.25.) 에티오피아 정부는 4.25일(일) 북부 암하라(Amhara) 지역에서 에티오피아 최대 종족 오로모(Oromo)와 암하라가 충돌하여, 최대 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발표했다. 암하라 지역이지만 오모로 인구가 대다수인 오로미야(Oromiya) 특별지역과 아타예(Ataye) 도시의 거주자 및 공무원들은 지난 4.16(금) 양 종족 간에 큰 충돌이 있었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하일레(Endale Haile) 옴부즈맨(Ombudsman)은 “실향민들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하면 동 지역에서 200명 이상의 사람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수치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에티오피아의 총선은 금년 6월 예정되어있으나, 여러 지역에서 정치적, 종족적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하일레 옴부즈맨은 이 충돌로 에티오피아 북부 쇼아(Shoa) 지역 내 약 25만 명이, 오로미야특별지역에는 약 7만 8천명이 실향민이 되었으며, 아타예 지역의 주택 20-25%가 전소되었다고 밝혔다. 3월에도 오로미야특별지역 내 작은 도시가 충돌로 전소되었으나 사상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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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차드 故 데비 대통령 참석... 아들 마하마트의 정권 계승 지지 (DW, 4.23.) 4.23일(금) 프랑스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차드 故 데비(Idriss Deby)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故 데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유일한 서방국 대통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프랑스는 누구든 차드의 안정과 통합을 방해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故 데비 대통령을 “친구이자 용기있는 리더”라고 불렀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과도정부에게 “안정성, 포용성, 대화와 민주적 전환”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故 데비 대통령을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협력자이자 사헬 지역 반군과의 분쟁에 대항하는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의 故 데비 대통령 지지와 정권 계승에 대한 無비판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분석가들은 프랑스의 주된 관심은 차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안정성이라고 지적했다. 사헬지역 전문가인 마샬(Roland Marchal)은 “프랑스는 차드군 내 분열과 무장 반군으로 차드 내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프랑스는) 차드 내 권력 공백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차드 내 주둔 중인 프랑스군은 5,100명으로, 사헬 지역 대테러작전 Barkhane를 주도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상기 장례식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참여한 것을 강조하며 서방국 중 차드 과도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프랑스뿐만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 아프리카 국가들의 원수들이나 주요 인사들의 장례식은 단순히 죽은 정치인을 애도하는 형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승계를 할 차기 인물에 대한 정당화와 정치적 지지의 장이며 '죽음의 정치(Politics of Death)'라고 아프리카민주주의 전문가인 치즈만(Nic Cheeseman)교수는 밝히고 있다. 특히 이번 故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프랑스 마크롱의 담론과 제스처는 아들 마하마트에 대한 철저한 신임을 공식화하면서 사헬지역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실주의적인 선택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차드 내부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묵살되어 서방국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규범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규범외교노선과 배치되는 행보여서 국제사회 및 시민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연관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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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 마이크로 관개농업 분야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 (The Africa Report, 4.22.) 부르키나파소가 마이크로 관개농업(micro-irrigation) 분야의 개척자가 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마이크로 관개농업이란, 물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해 지표면 또는 지표면 아래에서 저압의 관개수를 작물의 뿌리 부분에 직접 공급하는(drip-fed) 방식이다. 마이크로 관개농업은 노동력 절감에 효과적이다. 또한 '적하 시비법'(fertigation)*과 병행해서 사용하면, 마이크로 관개농업은 효율적인 수자원 활용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성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기후변화로 사헬(Sahel) 지역에서 가뭄이 극심해지면서, 마이크로 관개농업은 부르키나파소의 농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최근 인접국인 니제르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2019년 부르키나파소는 20개의 농장에서 마이크로 관개농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는데, 현재는 약 500개의 농장로 확대하였다. 부르키나파소 캄보(Donkora Kambou) 농업부 국장은 “증발을 최대한 제한할 수 있는 효율적인 관개기술과 지하수, 태양열 펌프를 활용하여 회복력(resilent) 있는 농업기술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니제르에서는 이스라엘 회사 네타핌(Netafim)이 마이크로 관개농업을 시행 중이며, 수자원의 30%~55% 가량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르키나파소의 마이크로 관개농업을 지원해온 미국의 비정부기구 IDE(International Development Enterprises)도 최근 감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마이크로 관개농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관개 농업기술은 사헬 지역뿐만 아니라 가뭄이 잦은 남아공에서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분석회사 Market Data Forecast에 따르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관개농업 시장의 규모는 2025년까지 연간 5억 72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하 시비법(fertigation) : 관개수에 비료를 녹여 함께 공급하는 방법 ※ 연관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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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80년대 튀니지 시위곡과 대중문화의 역사 (The Conversation, 4.21.) 오늘날 튀니지의 젊은 활동가들은 불만과 열망을 표현하는 도구로 랩과 일렉트로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울려 퍼진 시위곡은 큰 의미를 가진다. 부르기바(Habib Bourguiba) 前 대통령 집권기*이자 경제 불안정과 정치적 논쟁과 시위가 특징이던 1970년 중반~1980년대, 튀니지의 시위곡은 저항문화(counterculture)**로 발전하였다. 당시 시위곡은 학생운동과 소규모 풀뿌리 노조(grassroots unions)에 활약하던 튀니지 좌익 정당과 단체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들은 대중문화 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젊은층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면서도 활동가들을 고무시키고,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마지헨(Imazighen), 겔라(Hedi Guella) 같은 시위곡 가수들이 대학 캠퍼스나 집회, 문화센터, 주요 문화 축제에서 공연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곡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었지만 운동가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유포되었다. 이 시기 시위곡들은 대부분 우드(Oud), 네이(Nay), 다르부카(Darbuka) 등의 악기***를 사용한 아랍전통음악 장르였으며, 과거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시위곡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민족주의 음악과는 정치적·문화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튀니지 극좌파들은 마오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튀니지인들의 아랍-무슬림 정체성에 공감하지 않으면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좌파들은 사람들의 문화에 기반하면서도 진보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이념을 가진 새로운 인기 장르를 만들어야했다. 이들은 당시 신기술이자 저렴한 장비였던 오디오 카세트를 통해 시위곡을 전파했고, 이를 통해 수백 명의 튀니지인들이 실제로 곡을 듣기 위해 소규모 공연에 모였다.
부르기바에 뒤이어 1990년대에 집권한 알리(Ben Ali) 前 대통령의 독재정권 하에서 시위곡들은 사양길을 걸었다. 하지만 2011년 알리의 하야를 이끈 튀니지 혁명 이후 1970-1980년대 활동했던 몇몇 가수들이 재결합하는 등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과거 시위곡들은 정치 집회, 기념식, 축제에서 울려 퍼지고는 한다. 따라서 1970-1980년대 시위곡은 오늘날 운동가들과 조합들에게 정서적·정치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부르기바(Habib Bourguiba) 前 대통령은
1958년부터 1987년까지 튀니지를 장기집권하였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부르기바는 독립 튀니지 공화국의 국가 발전 목표를 근대화, 비이슬람화 세속구가화, 서구화에 두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게 된다. 하지만 부르기바 정권은 경찰국가, 언론탄압, 개인 숭배에 기초한 독재 체제로 변질되었으며 노조와 이슬람원리주의, 민주주의 세력의 반독재, 반체제 운동과 충돌하였다. ** 저항문화(counterculture)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하위문화
*** 우드(Oud)는 기타와 같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 네이(Nay)는 갈대피리, 다르부카(Darbuka)는 항아리 모양의 북으로 아랍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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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국별 조치 현황 -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코로나19 확산 관련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조치 현황 안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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