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EPRDF, 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은 억압적 통치를 자행하던 더그(Derg) 군부 정권을 몰아냈습니다. EPRDF는 1989년 정권타도를 목표로 싸우던 티그라이해방전선(TPLF, Tigray People's Liberation Front)이 암하라민주운동(ANDM, Amhara National Democratic Movement) 오로모인민민주조직(OPDO, Oromo Peoples' Democratic Organization, 현재 ODP), 남부에티오피아인민민주전선(SEPDF, South Ethiopian Peoples' Democratic Front)과 연합해 결성한 단체였습니다. 이들은 1995년 제1차 총선에서 하원 547석 중 493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EPRDF의 일당독재 논란이 불거졌으며, 특히 티그라이들을 중심으로 권력 독점이 이루어져 다른 민족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습니다(1).
소수민족인 티그라이가 권력과 경제를 독점하고
다수족 오모로를 중심으로 불만이 누적되어
폭력이 악순환하는 역사의 고리 형성
2012년 8월 제1대 총리였던 티그라이 출신인 멜레스(Meles Zenawi)가 중병으로 사망한 후, 이어 총리직에 오른 하일레마리암(Hailemariam Desalegn) 역시 티그라이 출신이었습니다. 2013년 세계은행은 티그라이 계열 대기업 EFFORT(Endowment Fund for the Rehabilitation of Tigray)가 대략 에티오피아 전체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등 티그라이가 에티오피아 전체 9천만 인구 중 단 6%만을 차지하는데 반해, TPLF는 EPDRF 연합 내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2). 2014년,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인 오로모를 중심으로 차별시정과 권리확대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10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어 10개월간 통행금지, 소셜미디어 차단, 야당 정치활동 제한 등의 조치가 내려졌으며,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700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여파 속에 하일레마리암 총리는 민족 연방제를 제외한 정치와 전반에 실패(3)하였다고 인정하고 2018년 2월 총리직과 EPRDF 당대표직을 전격 사임하게 됩니다. 이어 2018년 4월 오모로 출신인 아비(Abiy Ahmed)가 총리직에 오르게 됩니다. 1600년대 이후 1991년 이전까지 티그라이족과 암하라 족에게 미개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오모로의 역사(4)를 떠올리면 이 모든 변화는 종족 간 악순환을 깨고 새로운 에티오피아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발자국처럼 보였습니다.
연방의 깃발 아래 끓어오르는 민족주의
2018년 4월 아비 총리가 당선된 이후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민족 간 갈등은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못했습니다. 일례로 2018년 오로미아주에서 오로모족 출신 무장괴한 다수가 소말리족 시민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50여명의 사망자 및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소말리주 오가덴민족해방전선*(Ogaden National Liberation Front)은 배후 세력으로 TPLF 강경파(5)를 지목하였습니다. 7월 티그라이 주도(州都) 메켈레(Mekele) 에서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평화 기원 집회에 참여한 일부 참가자들은 아비 총리의 사진이 아닌, 멜레스 전 총리를 내세워 티그라이 지역의 기득권이 보장되던 과거 통치에 대한 향수를 표명하기도 하였습니다(6).
* 오가덴민족해방전선: 1984년 동부 에티오피아 소말리 지역을 중심으로 소말리족의 자치를 주장하며 결성된 반정부 성격의 무장단체였으나, 아비 총리 취임 이후 반정부단체 대상 유화 정책으로 인해 2018년 테러단체 지정이 해제되었음.
아비 총리의 노벨평화상 수상, 티그라이-에리트리아 역사적 문제 건드려
에리트리아와 에티오피아 전쟁은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에리트리아가 1997년 에티오피아로부터 경제주권을 선언하며 내륙 국가인 에티오피아의 에리트리아 항구 아사브(Assab) 사용을 막은데 이어(7), 소유권 분쟁이 있던 티그라이 지역 일부를 1998년에 무력 점령하면서 촉발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2018년 양국 총리가 “평화우호공동선언(Joint Declaration of Peace and Friendship)”에 서명함으로써 공식 종결되었으나, 에리트리아와 국경을 직접적으로 맞대며 양국 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티그라이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2019년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 플라우트(Martin Plaut) 선임연구원은 티그라이인들과 에리트레아인들은 반세기 동안 반목해 왔으며 티그라이 지역의 집권 세력이 바뀌지 않는 한 양국 간 국경 분쟁 해결은 물론이고 평화협정 달성 역시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8). 이러한 상황에 오모로인 아비 총리에게 수여된 노벨 평화상은 에티오피아 내에서 민족의 통합과 분리를 동시에 건드리는 양날의 검이 되었습니다.
깊어지는 연방 정부-티그라이 갈등
2018년 11월, 여러 TPLF의 핵심 인사들이 부패 척결을 이유로 체포되었습다. 이는 군부/정보부를 중심으로 남아있는 티그라이계 인사의 반개혁적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아비 총리의 의중이 반영(9)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1월 TPLF 측은 ‘종족 프로파일링(ethnic profiling)’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난(10)하였으며, 2019년 4월 정당회의에서도 아비 총리가 티그라이족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 와중 EPRDF의 구성정당 지도부는 2019년 11월 통합당인 에티오피아 번영당(PP, Prosperity Party)으로의 합병 원칙에 합의(11)했으나 TPLF만이 거부 의사를 표명하며 더욱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티그라이 뿐만 아니라 암하라주에서도 반(反)티그라이·반오로모 정서를 부추기던 암하라족 민족주의자 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 총선 시행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점쳐왔습니다(12).
코로나19로 인한 총선 연기와 티그라이의 반발
2019년 아비 총리는 2020년 5월 총선을 일정대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결국 8월 총선과 지방선거를 연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TPLF은 아비 총리가 코로나19 대유행을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할 뿐이라며 비난하며, 티그라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선거를 포함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13).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는 티그라이 주의 자체 총선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으나, 티그라이 주의회는 결국 9.9일(수) 티그라이주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말았습니다.
11.5일 아비 총리는 티그라이 지역에 6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TPLF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고 발표했습니다(14). 군인들은 지상에서 전투를 벌이고 연방 공군기가 무기와 연료 저장소를 폭격하였으며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티그라이 지도자들은 연방군이 민간인, 교회 일반가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에티오피아 정부는 TPLF만을 목표물로 타격하고 있으며, 오히려 티그라이 군부가 일반인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15).
아비 총리와 민주주의의 퇴행
아비 총리의 정치개혁은 그의 임기 초반에는 국내외적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도 낳았습니다. 2019년 에티오피아 정부가 선거법을 개정할 때 몇몇 야당들은 집권여당연합에 대항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며 개정을 반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비 총리의 주요 저격수 중 한 명인 야당 정치인 모하메드(Jawar Mohammed)는 번영당의 창당을 다국적 연방주의 국가에서 중앙집권국가로 회귀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아비 총리가 에티오피아를 권위주의 국가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모하메드는 2020년 7월 체포됐으며 현재 인종폭력 및 테러를 부추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에티오피아 정부는 3주간 인터넷을 차단하기도 했는데 수천 명의 언론인들이 당시 감금되기도 하였습니다(16).
에티오피아 연방과 티그라이 주정부 격돌, 에리트리아로 확산
11.10일(화), TPLF은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병력을 파견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TPLF는 에리트리아 수도 아스마라(Asmara)에 위치한 공항들을 겨냥하고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17).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수백 명 이상의 병력이 사망하고 3만 명 이상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수단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18). 또한 심각한 인권유린이 발생하여 에티오피아 인권위원회,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티그라이 청년단체인 삼리(Samri)가 암하라계와 웰키테(Wellcite)계 등 최소 600명의 소수민족을 학살하였다며 고발하였습니다.(19) 그리고 언론사 CNN은 에리트리아 군인들이 전쟁 도구로서 티그라이 여성을 집단적으로 성폭행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국제사회의 만류와 아비 총리의 개입 거절
11.4일(수), 폼페이오(Mike Pompeo) 미국 국무부 장관은 “TPLF가 에티오피아 연방군 기지에 공격을 감행했다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우리는 양측 모두 평화를 회복하고 긴장 완화를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며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UN 역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에티오피아 연방정부와 티그라이주정부는 각자 군에 명확한 지시를 내릴 것을 요청했습니다(20). 보렐(Josep Borrell) 유럽연합(EU) 외교정책대표는 에티오피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티그라이 분쟁이 지역 정세를 심각하게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며 교전의 즉각 중단 및 국제사회의 원조에 대한 티그라이 주민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비 총리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국제사회가 선의에 걱정하는 것을 알지만 스스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운을 뗀 뒤 “우방들의 충고와 우려를 고려하겠지만 내정 간섭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에티오피아 영토 내에서 법을 지키고 집행할 권리와 국제법상 불간섭의 기본 원칙을 존중해 달라”고 개입을 거절하였습니다(21). 12월 함독(Abdalla Hamdok) 수단 총리는 티그라이 난민 관련 협의를 하기 위해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했으나 몇 시간 만에 수단에 귀국하기도 하였습니다(22).
에티오피아 연방이 승리하였으나
이재민과 난민의 발생으로 심각한 인도주의적 문제가 대두
11.28일(토)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군은 티그라이 주도 메켈레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23). 12.2일(수), 국제연합(UN)과 에티오피아 정부는 탈환한 지역 내 인도주의적 구호요원 파견허용에 합의했습니다. 또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12월 말 2021년 6월에 지방선거를 개시하였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티그라이 지역 상황은 이전보다 크게 악화되어 1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고 2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티오피아 연방군이 티그라이 지역에서 검문소를 무단 침범한 국제연합(UN) 소속 직원들을 향해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24).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대아프리카 전략의 신호탄인가?
금번 티그라이 분쟁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눈에 띄었습니다. 12월 9일 미국 상원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티그라이 관련 인권 탄압 행위에 연루된 에티오피아 정계 및 군부 인사들에게 미국 정부 차원에서 제재를 부과하는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습니다(25). 또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티그라이 난민캠프에서 벌어진 약탈, 성폭행, 만행 등의 인권침해사례들과 에리트레아군이 난민들을 티그라이에서 에리트레아로 강제 이송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은 바이든 정부의 에티오피아 정부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압박을 보여 주는 것(26)으로 해석됩니다.
2.27일(토)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들에 대해 비난하며 아프리카연합(AU)과 국제사회에 심각해지고 있는 위기해결을 위한 도움을 촉구하고, “우리는 여러 단체들이 티그라이에서 신고한 살해, 강제 철거, 성폭행, 그리고 다른 매우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학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국제개발처(USAID)가 재난대응팀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27). 이에 대해 3.1일(월) 에티오피아 외무부는 미국이 에티오피아 개입, 특히 암하라 지역군 재배치에 대한 언급과 에티오피아 정부에게 티그라이 지역 병력을 철수하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상기 요청을 거부했습니다(28).
미국과 에티오피아는 100년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전통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의 주요 안보파트너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안보에 대한 사안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의 미국의 핵심이익에 관계되어있습니다. 이는 동 지역의 안보유지, 에티오피아의 안정을 통해 대테러작전의 수행, 이웃 국가인 소말리아의 분쟁안정화, 미-에이티오피아간 개발협력 파트너로서의 긴밀한 협력관계 유지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디아스포라들의 로비와 NGO활동 등을 통해서 의회와 각 유관기관의 정책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디아스포라 단체들은 아비 정부의 인권문제, 거버넌스 문제 등을 거론하며 비판적인 견지에서 미국 정부의 對에디오피아 정책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주요외교의제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바이든의 최측근 중의 하나인 쿤스(Chris Coons) 상원의원을 에티오피아에 특사로 파견하여 아비 총리에게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하기로 한 결정(29)은 미국 정부의 대아프리카 정책이 인권과 민주가치를 중심으로 전환되는 신호탄이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