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일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분쟁*
우리에게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잘 알려진 나일 강은 문명 발상지이며 6,650km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나일강은 에티오피아?케냐?르완다?탄자니아?우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수단?남수단?이집트 등의 강 주변 11개국에 수자원을 공급하는 생명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댐 건설을 통해 아프리카 최대 전력수출국으로 거듭나길 희망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2011년 청나일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The Grand Ethiopian Renaissance Dam, GERD) 사업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GERD는 총 저수용량 740억㎥의 아프리카 최대 수력발전댐으로, 6,000 MW 규모의 전기생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GERD를 이용해 자국민 1억 1천만 명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대 규모의 전력 수출국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GERD를 단순한 댐 사업 뿐만이 아닌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국가들은 에티오피아의 댐 건설을 국가안보위협으로 느껴
그러나 나일 강 하부에 위치한 국가들, 특히 수단과 이집트는 GERD를 국가 안보에 대한 심각한 생존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자국의 관개사업과 식수 공급량의 97%를 나일 강에 의존하고 있으며(1), 수단은 나일강 하류에 있는 카심 엘-기르바(Khashm el-Girba)댐, 로세이어(Roseires)댐, 세나르(Sennar)댐, 메로웨(Merowe)댐 등의 운영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에티오피아에 연 최소 400억㎥의 물을 방류할 것과, 가뭄시기에도 수자원 공급이 원활하도록 4년 치 이상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추가 저수지 조성도 요구하고 있습니다(2). 과거 나일강 상하류의 수자원 할당은 식민지 시절 영국-이집트 '나일강 수자원 협정'에 근거
역사적으로 이집트는 1929년 영국과 체결한 ‘나일강 수자원 협정’에 근거하여 나일 유역 국가들에 나일강 수자원을 할당해왔습니다. 이러한 협정의 배경은 영국이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이집트 지도자들과 협상하여 이집트의 나일강에 대한 독점권을 반대급부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이집트는 나일 강 연간 전체 수량 840억 톤 중 550억 톤에 대한 권리를 사용해왔습니다. 수단 역시 1959년 이집트와 아스완(Aswan) 댐에서 유입되는 수자원 중 25%(3)를 이용한다는 '나일강 이용에 관한 협정'을 이집트와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티오피아는 협상당사국으로서 배제되었고 이후 경제적 낙후로 나일 강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90년 대 이후 지속적인 경제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게 되면서, 댐 건설을 통한 전력생산과 경제성장은 민족 정체성을 고취하기위한 국가적 목표가 되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지역다자협의체 구성으로 자구적인 협력방안을 모색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과,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국가들은 이 협정이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다자체제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1999년 나일 강 유역 10개 국가들(에리트리아는 옵서버로 참여)은 세계은행의 지원자금을 바탕으로, 나일 강 유역 공동 수자원의 평등한 활용과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달성(4)하기 위해 '나일 강 유역 이니셔티브(NBI, Nile Basin Initiative)'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국가 인구 수(5)를 비례한 유수량 결정 등의 분야에서 줄다리기를 계속하며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에티오피아?수단?이집트가 GERD 분쟁의 최대당사자로 협상에 난항
2011년 에티오피아가 GERD 건설을 착공하며, 이에 밀접하게 관련된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 3개국은 2015년 협상의 기초가 될 ‘원칙 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과 하류 국가들이 댐의 전력생산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는 것에는 합의(6)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진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2019년 10월 미국 정부는 이집트의 요정으로 GERD 분쟁을 중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는 '이집트의 GERD 폭발' 발언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기도
미국의 개입으로 삼국은 3차 회담을 통해 합의점에 도달하는 듯 보였습니다. 2020년 2월, 삼국은 발전소 운영을 포함한 전반적인 운영과 분쟁 해결 및 정보 공유, GERD의 안전과 환경 및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공동연구까지 합의(7)하였습니다. 하지만 당 2월 에티오피아 측이 회의 불참을 선언(8)하고 미국 정부의 협상 압박 및 영향을 비판(9)하며 다시 모든 과정이 어지러지게 됩니다. 이집트 정부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이전에 합의했던 ‘모든 합의와 거래들’을 파기하고자 하며 여러가지 근본적인 사안들에 대해 거부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10).
트럼프 전대통령은 에티오피아에게 협상을 보이콧할 경우 개발원조비를 삭감할 것을 천명하였고 결국 1억 달러의 원조를 삭감(11)하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10월 트럼프(Donald Trump) 전대통령은 "이집트는 결국 완공 직전에 놓인 GERD를 폭파할 것”이라고 발언(12)해 물의를 빚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취임한 미국 바이든(Joe Biden) 정부는 GERD와 연관 없이 대(對)에티오피아 대외원조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13).
GERD 분쟁, 나일강유역의 문제를 넘어 국제안보의 중대사안으로
2020년 6월 3개국 수자원·관개부 장관들과 미국과 유럽연합(EU), 그리고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옵저버로 참여하여 분쟁중재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GERD 건설 관련 분쟁을 UN 안전보장이사회(UNSC)에 회부하자는 이집트의 제안을 거부하고 결국 7월부터 댐에 저수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2021년 3월, 수단 측은 유엔, 아프리카연합, 유럽연합, 미국에 공식 서한을 보내, 에티오피아의 청나일강(Blue Nile River) 대형 댐 건설 관련 분쟁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한편, 에티오피아는 이미 진행 중인 AU 주재의 분쟁협상에 더 많은 중재국들이 합류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14).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 주도로...아프리카연합(AU)의 역할에 귀추가 주목
한편 前AU 의장인 남아공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대통령의 중재 시도로 AU 협상테이블에 삼국이 처음으로 모였으나 댐 저수 속도, 가뭄시 운영, 법적인 제도장치 등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한편, 현 AU의장인 콩고민주공화국 치세케디(Felix Tshisekedi) 대통령은 작년 10월 부터 삼국 협상 중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 2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고 3월 이집트 엘 시시(Abdel Fattah al-Sisi) 대통령과 한 시간 넘게 GERD에 대해 토론하는 등 분쟁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치세케디(Felix Tshisekedi) 의장은 중재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4.3일(토)-4.5일(월) 킨샤사에서 개최될 삼국 장관급 회의를 마하마트 (Moussa Faki Mahamat) AU 집행위원장과 함께 주재할 예정이어서 AU가 주도하는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다시 주목받는 '나일 강 유역 이니셔티브(NBI)'의 역할... 자국 중심의 현실주의를 넘어 지역레짐으로
한편 브루킹스 연구소의 음바쿠(John Mukum Mbaku) 선임 연구위원은 논평을 통해 GERD분쟁이 삼국 간의 수자원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며 발생한 급박한 현실주의적 문제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나일강 유역의 절대적 빈곤 문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식량난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근원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핵심 3개국을 포함한 NBI 11개 당사국 모두가 나일강의 수자원과 관리를 '공동자산'으로 인식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나일강을 둘러싼 갈등은 국제 행위자들의 개입보다는 당사국들(riparians)간 관계 증진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집트는 미국, 유럽국가들에게 힘을 빌리기 보다 나일강유역 당사국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을 제안합니다. 또한 삼국간의 관계 개선도 현실주의적인 힘겨루기에만 머무르지 말고, 경제 발전과 빈곤 퇴치 등에 대한 각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이들의 요구를 반영한 합의문을 도출하여한다고 지적합니다. 즉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이고(inclusive) 상향적인(bottom-up) 소통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기회가 정기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물 안보, 기후변화, 식량 위기, 빈곤 퇴치 등의 나일강 수자원갈등의 진정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나가야한다고 제시합니다.
음바쿠 연구위원은 궁극적인 나일강 갈등 해결을 위해 나일강을 특정 국가의 독점적 전유물이 아닌 공유자원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수자원 공유 협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이 협정을 통해 모든 당사국의 권리 및 상호이익이 보장되고,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지역적인 레짐(regime)을 구축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음바쿠 연구위원은 현실적인 방안으로 NBI에서 2010년 체결하였지만 이집트와 수단이 서명하지 않아 난항에 이르렀던 '협력적 체제 협정(CFA, Cooperative Framework Agreement)'을 다시 제시합니다. 또한 CFA가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여 이집트와 수단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합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한 모델로 활용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NBI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회원국의 수자원부 장관들로 구성된 '나일 장관위원회(Nile-COM, Nile Council of Ministers)'를 활성화하여 위원회의 결정이 각 회원국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치적, 제도적 기능을 강화하여야한다고 주장하며 논평을 마무리합니다(15).
한국적 함의
한국의 경우, 2009년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로 인명사고로 인해 남북 간 합의가 있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좀 더 구속력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NBI의 경험에서 보듯이 동아시아에서 좀 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적 '레짐'이 필요하다는 제언은 GERD 분쟁 문제에서 한국적 함의를 찾을 수 있는 유용한 지적으로 생각됩니다(16). 또한 NBI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여 공공외교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외교정책제안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있는 조언으로 여겨집니다(17). 앞으로 한국이 아프리카 및 국제분쟁관련 현안에 좀 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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