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0일(목) 아프리카 소식 2020년 1월 30일 (목) | 2020-0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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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외교 - 前 반군지도자 소로, 코트디부아르 대선 출마 공포 (France 24, 1.28.)
- 앙골라 前대통령 딸 이사벨 두스산투스 사건 관련 용의자, 사망한 채 발견 (Al Jazeera, 1.24.)
2. 경제·통상 - 동아프리카공동체(EAC), 단일통화 발행가능성에 근접 (All Africa, 1.29.)
- 나이지리아, 2018년 대비 2019년 외국인 국채 구매자 수 감소 (Reuters, 1.17.)
3. 사회·문화 -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에 청춘을 빼앗긴 美청년들 (VOA, 1.29.)
- 벨기에리그에 진출한 최초 DR콩고 선수 모쿠나, 90세의 나이로 사망 (BBC,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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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반군지도자 소로, 코트디부아르 대선 출마 공포 (France 24, 1.28.) 28일(화) 前 반군 지도자 소로(Guillaume Soro)는 자신에게 발부된 체포 영장에도 불구하고 2020년 10월로 예정된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밝혔다. 지난해 23일(월) 코트디부아르 검사는 쿠데타를 일으킨 혐의로 전 국회의장 소로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였다. 그러나 소로는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자신을 사법 박해의 피해자라고 전하였다. 소로의 변호사는 프랑스 검사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지역 서아프리카사법재판소, 인권아프리카법원, 유엔에도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로의 사건은 2020년 10월 투표를 앞두고 정치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우와타라(Alassane Ouattara) 대통령은 2015년 재선에 성공하였지만 3선 출마 여부는 불투명하며 세계 최대의 코코아 생산국이자 서아프리카의 최대 불어권 경제국 코트디부아르의 대선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소로는 현재 군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는 다수의 전 반란군 지휘관에게 충성을 받고 있다. 그는 국회의장으로 몇 년 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우와타라 現대통령과 사이가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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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前대통령 딸 이사벨 두스산투스 사건 관련 용의자, 사망한 채 발견 (Al Jazeera, 1.24.) 앙골라 前대통령 딸인 이사벨 두스산투스(Isabel dos Santos)가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낭골(Sonangol) 회장 시절 경영난 조사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앙골라 그로스(Helder Pitta Gros) 검찰총장은 이사벨을 포함한 다른 4명의 용의자를 발표하였지만 용의자 중 한 명인 유로빅(EuroBic)의 책임자인 다 쿤하(Nuno Ribeiro da Cunha)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다 쿤하의 사망소식은 이사벨이 8년 동안 국가 자산과 관련된 의심스러운 거래를 하였으며, 국가 자산 수십억 불을 사용해 사업제국을 건설하였다는 일련의 문서가 발표된 지 며칠 만에 들려왔다. 한편, 2018년부터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이사벨은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그는 꾸준히 그와 관련된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최근에 대통령 출마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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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공동체(EAC), 단일통화 발행가능성에 근접 (All Africa, 1.29.) 동아프리카공동체(EAC) 회원국들은 EAC 통화연합의정서에 설명된 바와 같이 2024년까지 단일통화를 발행하는 데 필요한 기관을 설립하고 정책을 조화시키는 과정에 있다. EAC 음후무케코(Liberat Mfumukeko) 사무총장은 동아프리카통화연구소(EAMI) 설립에 대한 법안은 이미 정상회의에서 통과되었다며 EAMI는 차후 단일통화를 발행하는 동아프리카중앙은행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음후무케코 사무총장은 각료회의를 통해 EAC 내 조세조화정책을 승인하였다고 밝히고, 이 정책의 적절한 시행은 조세경쟁을 감소시켜 EAC 회원국 간 무역과 투자를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원활한 결제 시스템을 위한 금융시장 기본구조와 연금혜택 및 소비자보호를 위한 최종적인 지역규정을 마쳤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은행의 지원을 바탕으로 5년에 걸쳐 설립된 EAC는 EAC 통계개발 및 조화지역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음후무케코 사무총장은 “본 사업은 EAC 회원국, 통계청과 사무국의 역량구축을 통해 지역 내 조화통계생산을 지원하고 EAC 통계국 설립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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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2018년 대비 2019년 외국인 국채 구매자 수 감소 (Reuters, 1.17.) 외국인 투자자들은 2017년에 전체 국채 11.7%를, 2018년에 10.99%를 구매한 것이 비해 2019년에는 전체 국채 중 4.39%만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투자자 수의 감소는 국채 수익률이 감소하고 유가가 하락하자 나이지리아 국채 경매 참여율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나이지리아 부채관리본부는 올해 총 3조2600억 불 규모의 국채가 만기될 예정이며, 올해는 총 3조5800억 불 가량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이지리아 정부 당국은 올해 15년 만기 국채를 처음 도입할 뿐 아니라, 30년 만기 채권 또한 새로 매각해 장기 투자자들을 유치할 예정이다. 한편, 나이지리아는 외채를 사용하여 2020년 국가 예산을 충당할 계획이지만 나이지리아 채무국은 올해 유로본드 시장에 복귀할 여부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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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에 청춘을 빼앗긴 美청년들 (VOA, 1.29.) 10여 년 전 20여 명의 젊은 소말리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을 떠나 소말리아 알카에다 연계조직이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알샤바브(Al-Shabaab)에 가담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었다. 16개월 전 그 중 2명, 오마르(Ahmed Ali Omar)와 압디(Abdulkadir Ali Abdi)는 알샤바브 탈출에 성공하였다. 현재 두 사람은 암살자들에게 쫒기는 두려움 속에서 국가정보원(NIS)에서 제공한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Mogadishu) 소재의 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터닝 포인트> 2017년 10월 모가디슈 조베(Zobe) 교차로에서 트럭 폭탄 폭발사고로 최소 587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아프리카 대륙 역사상 단일 최대 규모의 테러 공격이었으며 심지어 알샤바브 대원들 조차도 아내와 친척 등 가족일원들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오마르와 압디는 알샤바브의 무자비한 민간인 살해와 재산 약탈, 그리고 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적 이유를 대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탈출한 두 청년은 결국 2018년 9월 소말리아 정부로 망명한 뒤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버려진 삶> 2006년 실질적인 정부가 없어 내전이 지속되던 소말리아에서는 범이슬람 세력 연합 단체인 이슬람법정연대가 장악을 하고 있었는데 에티오피아 정부의 개입으로 모든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알샤바브는 대원모집을 위해 전 세계에 있는 소말리아인들에게 에티오피아의 만행을 알리며 검은 손을 뻗고 있었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난민지위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오마르와 압디는 미국 내 가장 큰 소말리아 커뮤니티를 자랑하는 미네소타주에 정착했는데 지역 커뮤니티 내 알샤바브의 선동과 쇠뇌에 넘어가 결국 소말리아행을 택하였다. 관계자들은 이러한 지역 커뮤니티가 많은 청년들이 선동과 쇠뇌에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한편 오마르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겪은 일들이 다시는 젊은 소말리아 청년들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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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리그에 진출한 최초 DR콩고 선수 모쿠나, 90세의 나이로 사망 (BBC, 1.29.) 벨기에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DR콩고 선수 모쿠나(Leon Mokuna)가 벨기에 헨트(Ghent)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헨트에 정착하였고, 헨트에서 KAA 헨트(KAA Gent) 선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의 진출을 도왔다. 모쿠나는 강력한 슛으로 한 번 이상 골문을 두들긴다는 전설 때문에 ‘르 트루엣(Le Trouet)’이라는 별명이 주어졌다. 그는 레오폴드빌(현재의 킨샤사)에서 자랐으며, 1954년에 스포팅 리스본(Sporting Lisbon)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그는 1955년 1월 스포팅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으며, 11 경기에서 19개 골로 시즌을 마쳤다. AS 비타클럽(AS Vita Club)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는 1957년에 KAA 헨트로 이적하며 벨기에리그에서 뛴 최초의 아프리카 선수가 되었다. KAA 헨트는 공식성명을 통해 “레온 모쿠나는 헨트의 축구 아이콘이었으며, KAA 헨트는 그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 KAA 헨트는 벨기에의 최초의 아프리카 축구 선수였던 모쿠나와 인연을 맺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발표하였다. 모쿠나는 세코(Mobutu Sese Seko) 정부가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하기까지 사업가였으나, 전 재산을 몰수당한 후 헨트에 정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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