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8일 (목) | 2019-14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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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외교 - 모잠비크 정부와 야당·반군 모잠비크국민저항 간 평화협정 서명식 개최 (News24, 8.6.)
- 튀니지 9월로 예정된 대선, 후보들 속속 등록… 대선 윤곽 잡혀가 (Africanews, 8.7.)
- 감비아 진실화해委 관련 보도로 속속 드러나는 자메 전 정권의 잔혹상 (NPR, 8.7.)
- EU 새 지도부 출범 예정, 북아프리카발-유럽행 난민 관련 EU의 정책 재고 필요 (ISS, 8.7.)
2. 경제·통상 - 케냐 모바일머니 거래 과세, 실효성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Brookings, 8.7.)
-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산업, 과연 지속가능할까 (VOA, 8.7.)
- 연이은 분쟁으로 소 방목지를 포기하는 카메룬 음보로로족 (VOA, 8.7.)
3. 사회·문화 - 역사를 만든 여성: 평화를 위해 반군 지도자와 대면한 우간다의 베티 비곰베 (BBC,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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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정부와 야당·반군 모잠비크국민저항 간 평화협정 서명식 개최 (News24, 8.6.) 6일(화) 모잠비크 뉴지(Filipe Nyusi) 대통령과 제1야당이자 전 반군단체인 모잠비크국민저항(Renamo) 지도자 모마데(Ossufo Momade)가 마침내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6일(화) 뉴지 대통령과 모마데는 마푸투(Mapoto) 평화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여러 전직 대통령들과 외국 정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 합의를 마친 후 포옹했다. 또한 양측은 오는 10월 15일 치러질 총선에 평화롭고 공정하게 참여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8월 1일 양측은 고롱고사(Gorongosa) 국립공원에서 예비협정의 일환으로 적대관계 종식 합의에 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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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9월로 예정된 대선, 후보들 속속 등록… 대선 윤곽 잡혀가 (Africanews, 8.7.) 지난달 에셉시(Beji Caid Essebsi) 대통령의 별세로 9월 15일로 앞당겨진 튀니지 대통령 선거에 즈비디(Abdelkarim Zbidi) 국방장관이 7일(수) 독립후보로 등록했다. 그는 후보 등록 이후 장관직을 사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69세인 즈비디는 세속정당 ‘튀니지의 소리(Nidaa Tounes)’당 및 ‘튀니지의 지평(Afek Tounes)’당의 지지를 얻고 있어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해, 자유주의적 야당 ‘튀니지만세당(Tahya Tounes)’의 유력 후보인 차헤드(Youssef Chahed) 총리와 경쟁할 전망이다. 한편 그의 후보등록 전날인 6일(화)에는 튀니지의 가장 큰 정당인 엔나흐다(Ennahda)당이 무루(Abdel Fattah Mourou) 부대표를 대선후보로 지명했다. 이들 주요 후보의 출마로 대선 국면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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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진실화해委 관련 보도로 속속 드러나는 자메 전 정권의 잔혹상 (NPR, 8.7.) 감비아에서는 2018년 설립된 진실·화해·배상 위원회(TRRC)가 1994-2016년 22년간 감비아를 통치했던 자메(Yahya Jammeh) 전 대통령 집권기 자행된 부패와 인권탄압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곳곳에서 텔레비전 앞에 모여 관련 소식을 시청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자메 전 정권에서 잔혹행위에 앞장선 준군사조직인 일명 ‘정글러(Jungler)’ 소속이었던 대원들의 증언이 이뤄지고 있다. 7월 열린 청문회에서 잘로우(Omar Jallow)는 2013년 그와 다른 정글러 대원들이 자메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감비아계 미국인 두 명을 질식시키고 참수했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의 가족들은 이들이 감비아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호소했으나 자메 전 대통령은 이들이 정권 전복을 위해 왔다며 처형을 지시했다. 다른 정글러 대원들도 이주민·재소자·전직 군 고위장교·언론인·정적 등의 학살과 처형 및 고문에 가담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적인 지시임을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따랐다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TRRC는 과거의 잘못을 진실되게 증언한 용의자들 일부를 사면할지의 여부를 향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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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새 지도부 출범 예정, 북아프리카발-유럽행 난민 관련 EU의 정책 재고 필요 (ISS, 8.7.)
지난 7월 초선·재선 유럽의회 의원들이 업무를 시작했다. 11월에는 유럽연합 지도부도 교체될 예정이다. 지도부 교체는 EU의 난민정책을 재검토할 기회다.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 문제는 EU 정책결정자들에게 가장 난해하고 민감한 문제 중 하나다. 신임 지도부가 들어서면 전임자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아프리카 정세는 현재 매우 복잡하고 취약하다. 모로코 국민의 43%는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응답한다. 튀니지에서는 고실업과 고인플레이션으로 시위가 점점 더 거세지는 중이다.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다 잡혀 강제 회항된(intercepted) 북아프리카 비정규 이민자 규모는 2016년 1만5,961명에서 2018년 38,968명으로 급증했다. 반이민 정서가 힘을 얻고 있는 탓에 EU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민자 통제를 위해 원조를 제공하고 외교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을 원하는 정서는 줄지 않고 있다. 모로코 젊은 성인 인구의 70%가 이민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한다. 알제리나 튀니지에서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EU 정책결정자들은 다음 다섯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이민자 출신국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출신가족 및 지역, 경제적 지위와 나이 등이 경제적 선택지를 규정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둘째, 북아프리카로부터의 이민이 출신국의 사회문제를 경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해당국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불만을 지닌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면 이민보다도 훨씬 큰 경제·안보 측면의 손실이 일어날 것이다. 셋째, 이민 문제는 유럽만큼이나 모로코·알제리·튀니지 정부들에게도 중요한 정치적 문제다. 이들이 암묵적으로 이민을 허용함으로써 국내안정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들의 정치상황 및 정치적 요구를 계산하지 않은 EU 이민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집행을 우선하는’ 프로그램은 성공할 수 없다. 집행 중시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집행당국에 안보역량이 불충분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위에서 보았듯이 집행이 약한 데는 역량부족보다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 다섯째, 현재의 비정규·정규이민 실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모두에 실이 되고 있다. 비정규이민은 유럽에게는 문제고 북아프리카에게는 불충분한 해법이다. 정규이민은 북아프리카 두뇌유출을 통해 유럽에 이익을 가져다줌으로써 북아프리카의 경제성장 동력을 없애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민에 대한 보다 평등하고 통합적인 접근법을 만들기 위해 유럽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허심탄회하게 토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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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모바일머니 거래 과세, 실효성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Brookings, 8.7.)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아프리카성장이니셔티브(Africa Growth Initiative)는 “아프리카 내 휴대전화 금융거래 과세: 케냐의 교훈”( 링크)이라는 보고서를 발간, 케냐의 모바일머니 과세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밝혔다. 케냐는 모바일머니 거래와 휴대전화 충전요금(airtime) 과세요율을 높였는데, 해당 보고서는 이것이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어 이들의 금융접근성을 낮출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케냐의 정규금융 통합수준은 2006년 27.4%에서 2016년 75.3%로 뛰어올랐다. 이는 모바일 금융서비스가 널리 보급된 영향이 크다. 아직 비율은 작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거래건수도 꾸준히 늘어 2010년 3.6%에서 2017년 9.7%가 됐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점은 ‘건수’는 늘었지만 거래당 평균액수는 2011년 이래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저소득층의 모바일금융 사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휴대전화 충전요금 과세는 2003년, 모바일 금융서비스에 대한 과세는 2013년 도입됐으며 2018년 요율이 올랐다. 그러나 이들 과세는 세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7-2018년, 두 세금은 모든 정부 조세수입의 2%를 차지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의 세금체계는 이중과세 소지도 있다. 모바일 금융거래를 위해서는 휴대전화 요금을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바일머니 대신 다시 현금사용을 확산시킬 우려 및, 빈곤층을 금융에서 배제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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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산업, 과연 지속가능할까 (VOA, 8.7.)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60%가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2개국에서 나온다. 그러나 카카오 재배 농민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는 톤당 2,600달러의 카카오 하한가 도입을 제안했다가 7월 이를 철회하는 대신 톤당 400달러의 ‘생계보조금’을 부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초콜렛 시장가치는 1,000억 달러 이상이지만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는 여기에서 불과 60억 달러 정도를 가져갈 뿐이다. 농민들은 소득수준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카카오 재배를 포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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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분쟁으로 소 방목지를 포기하는 카메룬 음보로로족 (VOA, 8.7.) 카메룬에서 영어권 분리주의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토착민족인 음보로로(Mbororo)족이 전통적인 소 방목지를 포기하고 피난을 떠나고 있다. 이들은 전투원으로 가담하거나 자신들을 지원하라는 분리주의자들의 요청을 거부한 뒤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축산업 부문도 타격을 받고 있다. 영어권 지역에서 사육되는 소 300만 마리 가운데 70%를 음보로로족이 소유하고 있다. 한편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공격 책임이 없다며, 분리주의자를 가장한 소 도둑이나 군인들이 진범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초포(Deben Tchoffo) 노스웨스트(North West)주 주지사는 음보로로족 마을을 보호하고 생필품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 카메룬은 과거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패전하자,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두 지역이 통합해 한 나라를 이뤘다. 10개 주 가운데 8개는 불어권, 2개는 영어권이다. 불어와 영어 모두 공용어로 지정돼 있으나 다수 언어인 불어가 우세하다. 2016년 영어권 법률가·학생·교사들이 언어 차별 정책에 반대해 벌인 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면서 저항운동이 발생했으며, 2017년 10월 '암바조니아 공화국' 수립을 추구하는 분리독립운동으로 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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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든 여성: 평화를 위해 반군 지도자와 대면한 우간다의 베티 비곰베 (BBC, 8.7.) 베티 비곰베(Betty Bigombe) 세계은행 취약·분쟁 및 폭력사태 담당국장(Senior Director for Fragility, Conflict and Violence)은 우간다 북부에서 11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교육만이 자신의 삶을 바꾸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은 그는 교회의 지원을 받아 학업을 계속해 결국 하버드 대학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1980년대 초 오보테(Milton Obete) 독재정권에 맞서는 무세베니(Yoweri Museveni)의 게릴라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귀국한 그는 무세베니 지지자들을 케냐로 피신시키는 데 기여했다. 1986년 내전이 끝나고 무세베니가 대통령직에 오르자 비곰베는 장관으로 임명됐다. 책상물림을 원치 않았던 그는 북부에서 ‘신의 저항군(LRA)’ 반군활동이 벌어지자 반군 소재지 및 무기고를 찾는 일에 나서겠다고 자청했다. 이에 무세베니 대통령은 LRA가 숨어 있는 정글에 들어가서 휴전을 이끌어내라는 역제안을 내밀었다. LRA는 여성 납치와 성폭력을 자행하기로 유명한 집단이었기에 특히 여성으로서 이런 임무에 임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비곰베는 결국 LRA 지도자 조지프 코니(Joseph Kony)를 만나러 갔다. 갖은 경고와 협박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기다린 끝에 그는 코니를 만날 수 있었고, 18개월간의 협상 끝에 평화회담에 나서겠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세베니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대중집회를 열어 코니에게 굴복을 요구했다. LRA는 수단과의 국경 인근에서 300명을 학살하는 것으로 응수했고, 비곰베는 절망에 빠져 사임한 뒤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다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세계은행 분쟁후 재건팀에 들어갔다. 그러다 2004년 어느 날 아침 모든 것이 바뀌었다. CNN을 틀었다가 LRA의 학살 소식이 속보로 나오는 가운데 ‘전쟁을 거의 끝낼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라는 표현과 함께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비곰베는 우간다로 돌아가 코니와의 새로운 협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간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편향 시비가 붙을까 우려한 그는 딸의 학비로 쓰려고 저축한 돈 등 사비를 들여가며 협상에 나섰다. 결국 서명에 이르는 데는 실패했지만 2006년 평화회담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고, 그 이후 LRA 활동은 잦아들었다. 비곰베는 세계 각지를 돌며 중재자들을 육성하고 정글 속에서 배운 교훈을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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