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7 [아프로29] 여행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편견을 깨다- 윤준성 트래블두 대표 [월드코리안신문]
관리자 / 2022-03-17 오전 11:34:00 / 2112일간지 사진기자 출신의 윤준성 ‘트래블두(Travel Do)’ 대표는 서른이 되기 전 아프리카 여행을 꿈꿨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며 유년 시절부터 꿈꿨던 야생 동물을 직접 보고 이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소 무모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여행길에 오른 윤준성 대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을 자주 오갔다.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아프리카 여행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아프리카 대륙이 여행지로서 지닌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는 끝내 그 활동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 결과 윤준성 대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N 예능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소개되어 큰 관심을 받은 가이드북 <동·남 아프리카 여행백서(박예원 작가 공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여행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했는가 하면, 아프리카 여행 컨설팅 회사 트래블두를 설립해 실질적으로 아프리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그릇된 인식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행이라고 굳게 믿는다.
젊은 날의 버킷리스트
사회에 일찍 나왔다. 대학생 기자로 활동하다가 공석이 생겨 자연스럽게 취직했다. 어린 나이에 일간지 사진기자가 되어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선배들과 경쟁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정치부에서 연예부로, 연예부에서 스포츠부로 옮겨 다녔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미래도 그리지 못한 채 쳇바퀴 돌 듯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다. 이대로 안되겠다 싶어서 목표를 세웠다. 서른이 되기 전 아프리카 대륙 혹은 쿠바, 알래스카 중 한 곳은 꼭 가리라고 다짐했다.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곳은 사진가로서 내가 꼭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지역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준비를 하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를 갈까. 일단 알래스카는 물가가 너무 높았다. 자연 환경이 특수하다 보니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 등 경비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빠르게 쿠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 미주대륙 전체가 어수선했다.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는 아프리카라는 광활한 대륙이었다. 때마침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스포츠부 사진기자이기도 했지만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를 특히 좋아했기에 남아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겁이 없는 편이다. 남아공에 가며 남들이 품었을 괜한 걱정을 나는 하지 않았다. 대신 치기 어린 마음으로 ‘어떻게 털릴지’를 거듭 상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무지했던 것 같다. 우선 아프리카에 가면 무조건 도둑을 맞는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전제로 깔고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도둑맞는 과정을 내심 심각하게 그리기도 했다. 참고로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대륙을 빈번히 오가며 불미스러운 일을 딱 한 번 겪었는데, 그것도 내가 부주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고, 처음 내가 세운 계획은 한 달 동안 남아공에서 출발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로 갔다가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와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나미비아, 보츠와나, 탄자니아에서는 사파리를 즐길 참이었다. 유년 시절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며 꿈꿨던 야생을 실제로 보고 카메라에 담을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미비아에서는 기대만큼 다양한 동물을 보지 못했다. 한풀 꺾일 법한 기대감이 보츠와나에서 서서히 충족되더니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에서 폭발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둘러보려면 무조건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야 했다. 나는 세렝게티에서 보낸 시간이 무척 만족스러워 3박4일의 투어 일정이 끝나자마자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해 다시 세렝게티에 들어갔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야생 동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묘한 감동을 안겼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대에 야생을 영위했을 인류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문명사회를 구축했는지 상상해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동시에 반대로 그 안에서 취약하여 도태되는 동물을 보며 현재 동물과 인간이 처한 처지가 전혀 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화로 인해 편리한 삶을 살지만 여전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성립되는 가운데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야생 동물이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들었다. 사진가로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귀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남아공이 안겨준 전화위복의 기회
탄자니아에서 야생의 삶을 엿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예정대로 축구를 관람하기 위해 케냐를 거쳐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케냐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로 이동할 때 멋모르고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했다가 경유를 세 번이나 하는 최악의 경험을 해야 했다. 지칠 대로 지친 채 한밤중에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떨어진 나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져 외국인 홀로 밤중 탑승을 피해야 할 미니버스에 냉큼 올라탔고 버스비가 있느냐는 운전사 무리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월드컵 티켓을 살 돈을 꺼내 보였다. 돈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자초했는지를 깨달았다. 상황은 예상대로 전개됐다.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 도시에서 한밤중에 검증되지 않은 교통수단에 올라타 돈다발을 흔들었으니 이것은 명백한 내 불찰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 일행이 카메라 가방을 알아보지 못해 고가의 카메라 장비는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이 내가 10년간 아프리카 국가들을 드나들며 유일하게 겪은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문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된 나는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불현듯 지인이 코카콜라 응원단으로 요하네스버그에 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작정 코카콜라 응원단이 머무르는 숙소로 향했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나는 관계자에게 애걸복걸했다. 여독이 쌓인 몰골이 그날따라 내린 비로 더 처참해 보였을 터. 관계자는 나를 들여보내줬다.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그날부터 응원단에 합류한 나는 특기를 살려 사진 촬영하는 데 열중했다. 한 축구협회 관계자의 눈에 그런 내 모습이 인상적으로 비쳤는지 그는 내게 정식으로 평가전을 촬영해보겠느냐고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 가치를 인정받는 일인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열과 성을 다해 촬영했고 그 덕에 일정 내내 응원단과 함께 합숙하며 지낼 수 있었고 심지어 귀국한 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되는 뜻밖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경비를 번 나는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원래 계획했던 여행 기간을 한 달에서 석 달로 연장했다.
하루 있을 계획이던 지역에서 일주일을 머물렀고, 여행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내 계획에 없던 지역을 간다고 하면 따라 나섰다. 여담이지만 그 과정에서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영어 울렁증이 많이 극복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출국 심사 중 붙잡혔다. 알고 보니 남아공이 한국인에게 허용한 무비자 체류 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몰랐는가 하면, 당시 서점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아프리카 가이드북에 ‘3개월 무비자’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안 사실인데 그 가이드북은 일본에서 발간한 책의 번역본으로 가장 중요한 기본 정보마저도 우리 실정에 맞게 편집되지 않았던 것이다. 억울했다. 귀국한 후 벌금을 지불하겠다고 사정한 끝에 귀국길에 오른 나는 이 일을 통해 아프리카 가이드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남아공에서 도둑을 만난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한국축구협회에서 일하게 된 나는 그때부터 돈을 모으면 무조건 아프리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정말 순수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네 차례 다녀왔다. 그중 두 번째 아프리카를 찾았을 때는 이집트와 모로코를 목적지로 삼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갔을 때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 시위의 물결이 번지고 있었다. 시위는 점점 격해지더니 폭력 사태로 번졌고 여행객들은 급히 이집트를 빠져나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이때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사진기자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시위 현장의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저지하자 종군기자라고 둘러댄 채 현장을 파고들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말 그대로 사진을 셀 수 없이 많이 찍었지만, 아랍의 봄 시위 현장을 담은 사진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때 찍은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 깊숙한 곳에 내재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 여행길에서 촬영한 사진을 추려 전시회를 열었다. <당신이 몰랐던 아프리카>라는 제목 아래 야생 동물 혹은 풍경 사진을 주로 전시했다.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에 빈곤, 기아, 전쟁 외에도 이렇듯 멋진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한편, 개인적으로 아랍의 봄 사진이 인상 깊었기 때문에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후 이를 주제로 전시를 열고 싶었으나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무산됐다. 야생 동물이나 풍경 사진보다 작가로서 더 애착을 느끼는 사진이었던 만큼 전시하지 못한 점이 지금까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